전력망엔 돈, 화학엔 칼…에너지·화학 ‘지원과 규율’ 한주
정부, 전력망·재생에너지·자원안보 투자 확대…검찰은 석유화학 담합 의혹 압수수색
양지욱 기자
yjw@sateconomy.co.kr | 2026-08-08 17:57:04
8월 2~8일 에너지·인프라·화학업계는 정부 지원과 규제 압박이 동시에 커진 한 주였다. 정부는 전력망과 재생에너지, 원전, 자원안보에 대규모 투자와 금융지원을 예고했다. 반면 공정거래위원회는 화학·석유제품 담합을 집중 점검 대상으로 올렸고, 검찰은 LG화학·한화솔루션 등 석유화학 7개사를 압수수색했다. 산업을 키우기 위한 돈과 시장질서를 바로잡기 위한 칼이 함께 움직인 것이다.
정책의 중심에는 전력망이 있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2040년까지 석탄발전을 중단하고 재생에너지와 원전을 결합한 전원 구성을 담겠다고 밝혔다. 서해안 초고압직류송전(HVDC) 등 송배전 설비 확충, 지역별 전기요금제 도입, 전기위원회 독립성 강화, 전력감독원 신설도 추진한다.
정부는 2030년 재생에너지 100GW 달성을 목표로 태양광·풍력 규제를 완화하고, 정부 지원 사업에는 국산 태양광과 인버터 사용을 확대한다는 방침도 내놨다. 발전소를 얼마나 더 짓느냐보다 생산된 전기를 어디로 어떻게 보낼지가 정책의 핵심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HVDC, 변압기, 배전망, 에너지저장장치(ESS), 가상발전소(VPP) 등 계통 산업의 성장 가능성도 커졌다. 한국전력뿐 아니라 HD현대일렉트릭, 효성중공업, LS일렉트릭 등 전력기기 업체에도 중장기 수요가 열릴 수 있다.
산업통상부는 에너지 정책에 안보를 더했다. 핵심광물 확보와 석유·광물 비축, 원유 도입 다변화를 지원할 ‘산업자원안보기금’ 신설을 추진한다. 원유와 가스의 중동 의존도를 낮추고 필수 석유화학 제품도 비축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이다. 핵심광물 비축 품목은 24종에서 29종으로, 최대 비축물량은 180일분에서 365일분으로 늘리기로 했다. 원전·전력·방산 등 전략품목에는 올해 18조원, 2030년까지 총 127조원의 무역금융을 공급할 계획이다.
석유화학은 지원과 구조조정이 함께 요구되는 업종이 됐다. 정부는 이산화탄소 포집·활용·저장(CCUS) 실증과 고부가·저탄소 기술 전환을 지원하고 있다. 방향은 분명하다. 범용제품 공급과잉을 그대로 두기보다 생산시설을 통합하고, 고부가 제품과 저탄소 공정에 자원을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주 업계를 흔든 것은 지원책보다 수사였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는 지난 5일 LG화학, 한화솔루션, 애경케미칼, OCI, 롯데정밀화학, PKC, 유니드 등 7개사를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PVC와 가소제, 가성소다, 염산 등 8개 석유화학 제품의 가격을 수년에 걸쳐 담합한 혐의를 들여다보고 있다. 중동 불안 이후 나프타 조달 차질이 발생한 상황에서 가격을 공동으로 올렸는지도 수사 대상이다. 현재는 혐의 단계로 위법 여부가 확정된 것은 아니다.
공정위도 하반기 업무계획에서 화학제품, 페인트, 석유제품 담합을 집중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원료 가격이 급등하거나 공급이 불안한 시기에 경쟁사들이 가격 정보를 교환하거나 비슷한 시점에 가격을 조정하는 관행까지 검증 대상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석유·화학업계에는 원가와 업황 못지않게 컴플라이언스가 주요 경영 리스크로 떠올랐다.
기업 실적은 석유화학 회복의 한계를 보여줬다. 롯데케미칼은 지난 7일 2분기 연결 매출 5조6864억원, 영업이익 1101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전분기에 이어 흑자는 유지했다. 다만 기초화학 부문은 매출 3조9403억원에 영업이익 23억원에 그쳤다. 반면 첨단소재는 영업이익 1325억원, 롯데정밀화학은 619억원을 냈다. 이익은 범용 기초화학보다 첨단·정밀화학에서 나왔다.
원가 부담도 남아 있다. 한국가스공사가 공시한 8월 산업용 도시가스 도매요금은 MJ당 23.5305원으로 7월보다 11% 올랐다. 주택용 도매요금은 유지됐다. 가스공사는 천연가스 도매요금 대부분을 차지하는 원료비가 국제유가와 환율에 연동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에너지 사용량이 많은 화학·소재·철강업체에는 비용 변수가 하나 더 생긴 셈이다.
전력 분야에서는 폭염이 정책의 시급성을 확인시켰다. 지난 6일 최대 전력수요는 95.044GW까지 올랐고 공급예비율은 10.4%였다. 제주에서는 4일 오후 7시 전력수요가 1.1863GW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력당국은 산업체 휴가가 끝나 조업률이 오르면 지난해 8월 기록한 전국 최대전력수요 97.1GW를 넘어설 가능성에도 대비하고 있다.
이번 한 주를 관통한 단어는 전력망, 안보, 구조재편, 규율이다. 전력과 원전, 재생에너지는 정부 투자가 시장을 넓히는 국면에 들어섰다. 석유화학은 정부 지원을 받더라도 범용제품 감산과 사업 통합을 피하기 어려워졌다. 여기에 담합 수사와 산업용 에너지 가격 상승까지 겹쳤다.
다음 주 관전 포인트는 폭염에 따른 최대 전력수요 경신 여부와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 구체적인 전원·송전망 투자 규모다. 석유화학에서는 검찰의 압수물 분석과 공정위 조사 범위가 다른 제품이나 업체로 확대될지도 지켜봐야 한다. 업황보다 정부가 어디에 돈을 넣고, 무엇을 줄이며, 어디를 규제하는지가 기업별 명암을 가르는 시기가 됐다.
토요경제 / 양지욱 기자 yjw@sat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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