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의 문화산책] 돈 있어도 못 산다…미술시장 '안목', 언제 권력이 되나

팔고 싶어도 못 파는 작가, 돈이 있어도 못 사는 컬렉터…시장 선택은 어떻게 이뤄지나

마리아김

문화전문기자 kimjjyy10@gmail.com | 2026-08-18 13:19:24

미술시장에서는 돈이 있어도 작품을 살 수 없는 순간이 있다.

최근 영국에서 모니카 셰외 작품 거래를 둘러싸고 소송이 벌어졌다. 쟁점은 뜻밖에도 작품 가격이 아니라 '누가 작품을 살 수 있는가'였다.

분쟁의 대상은 스웨덴 출신으로 영국에서 활동한 페미니스트 작가 모니카 셰외(Monica Sjöö)의 대형 회화 세 점이다. 거래는 2023년 시작됐지만 구매자들이 런던 앨리슨 자크(Alison Jacques) 갤러리를 상대로 계약 위반 소송을 제기한 사실이 최근 알려지면서 미술계의 관심을 받고 있다.
 

▲ 모니카 셰외(Monica Sjöö) , 1999. [Albin Dahlström/Moderna Museet]

 

구매자들은 2023년 10월 셰외의 회화 세 점을 총 26만4000파운드에 매입하고 대금도 지급했다. 그러나 이후 구매자와 작가 유족 측이 만난 뒤 상황이 달라졌다. 갤러리 측이 거래 취소 의사를 밝히면서 작품의 실물 인도는 이뤄지지 않았다. 구매자 측은 이미 성립한 거래를 갤러리가 취소했다며 소송을 냈고 갤러리도 반소에 나섰다. 재판은 2027년 3월 예정으로, 거래 취소의 정당성 등을 둘러싼 법원의 판단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거액의 대금까지 지급했지만 구매자는 작품을 넘겨받지 못했다. 일반적인 상품 거래라면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물건을 사겠다는 사람이 판매자가 제시한 가격을 지불했는데도 구매자의 자격과 태도가 거래의 변수가 됐기 때문이다.

미술시장, 특히 수요가 높은 작가의 1차 시장에서는 구매자 선택이 거래의 한 요소로 작동한다. 작품이 누구에게 가느냐가 이후 작가의 시장에도 영향을 줄 수 있어서다. 그래서 갤러리는 구매자가 작품을 산 뒤 곧바로 경매에 내놓는 '플리핑(flipping)'을 목적으로 하는지, 자신만의 컬렉션을 구성하며 작품을 오래 보유하는지를 중요하게 본다.

이 시장에서는 때로 '얼마에 사느냐'만큼 '누가 사느냐'가 중요하다.

그런데 같은 미술시장 안에서 누군가는 정반대의 고민을 한다.

작업실에는 작품이 쌓이는데 사겠다는 사람이 없다. 이제 막 시작한 신진작가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20~30년을 작업하고도 주요 갤러리나 기관과 연결되지 못한 채 시장 밖에 머무는 작가들의 이야기다.

오래 손댔다고 좋은 작품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팔리지 않는다고 좋은 작품이 아닌 것도 아니다. 한쪽에서는 '누구에게 팔 것인가'를 고민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누가 사줄 것인가'를 고민한다. 이 두 시장의 거리는 최근 더 선명해지고 있다.

세계 미술시장은 지난해 다시 성장했다. 그런데 돈이 향한 곳을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2026년 아트바젤·UBS 글로벌 미술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세계 미술시장 거래액은 596억달러로 전년보다 4% 늘었다. 공개 경매에서는 1000만달러가 넘는 고가 작품 판매액이 30% 증가했다. 반면 5만달러 미만 작품은 판매액과 거래량이 각각 2% 감소했다.

시장에 돈은 돌아왔지만 그 돈이 골고루 돌아온 것은 아니다.

시장이 불안할수록 이런 쏠림은 더 이해하기 쉬워진다. 컬렉터 역시 큰돈을 쓸수록 실패할 가능성을 생각한다. 아직 평가가 쌓이지 않은 작가보다 이미 미술관과 갤러리, 경매시장에서 이름이 확인된 작가의 작품에 손이 가기 쉽다. 실제로 지난해 미술시장 회복도 고가 작품과 이미 검증된 작가 쪽에 집중됐다.

그렇다면 반대편에 있는 작가에게는 더 어려운 문제가 생긴다.

작품이 먼저 인정받아 이름이 생기는 것일까. 이름이 생겨야 비로소 작품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일까.

미술시장에서는 작품 뒤에 붙는 이름이 중요하다. 어느 갤러리가 작가를 발굴했는지, 어떤 큐레이터가 손을 댔는지, 어느 미술관이 소장했는지, 어떤 컬렉터가 작품을 선택했는지. 이런 선택은 시간이 지나면서 작가와 작품의 이력이 된다.

어제까지 몰랐던 작가라도 유명 갤러리가 전속 계약을 맺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다시 보게 된다. 주요 미술관 전시에 들어갔다면 한 번 더 눈길이 간다. 이름난 컬렉터가 샀다는 이야기가 나돌면 '내가 보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이름 모를 갤러리스트가 진흙에 박혀 빛을 내지 못하던 작가의 진수를 먼저 발견하기도 하고 오랜 연구에 매달린 큐레이터가 무명 작가 작업의 본질을 먼저 찾아냈을 수도 있다. 또 컬렉터지만 전문꾼이 살벌한 시장보다 먼저 히어로가능성을 알아봤을 수도 있다.

▲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어느 수집가의 초대–고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 기념전> [국립중앙박물관]

 

우리는 이것을 '안목'이라고 부른다.

안목이 반복되면 평판이 되고, 평판은 나중엔 대중의 신뢰가 된다. 그래서 나중엔 이런 안목 가진 이가 좋은 작품을 골라서 작품이 유명해진 건지 그가 이 작품을 고른 이유가 단초가 돼 작품이 유명해진 건지 구별하기도 어려워진다.

안목이 권력이 되는 순간이다. 유명 컬렉터가 작품을 사면 관심이 생기고, 영향력 있는 갤러리가 작가를 선택하면 시장이 바라본다. 주요 미술관의 전시와 소장은 다시 작가의 이력이 된다. 각각의 선택은 전문적인 판단일 수 있지만, 그 선택이 쌓이면 다음 사람의 판단에도 영향을 미친다.

여기에 미술시장의 역설이 있다. 작품의 가치를 숫자로 측정하기 어렵고 거래 가격과 조건이 충분히 공개되지 않을수록 사람들은 전문가의 판단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전문가를 필요로 하는 시장은 전문가의 권위를 빌리려는 사람에게도 유리한 시장이다.

누가 정말 작품을 오래 보고 작가를 발견한 사람인지, 누가 인맥과 명성을 이용해 자신의 선택에 권위를 더하는지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추천과 판매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얽힐 수도 있다. 서로의 선택에 권위를 부여하면서 외부에서는 가격과 평가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기 어려운 구조가 생길 수도 있다.

그렇다고 미술계의 모든 관계와 네트워크를 담합이나 권력 행사로 볼 수는 없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작가를 오랫동안 지원한 갤러리스트, 시장과 관계없이 작품을 연구한 큐레이터와 비평가, 남들이 보지 않을 때 작품을 산 컬렉터의 선택이 작가를 세상 밖으로 끌어낸 경우도 있다.

그래서 구별이 어렵다.

안목과 권력은 때때로 같은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

수십 년을 그리고도 아직 시장이 발견하지 못한 작가와 작품 한 점을 사기 위해 컬렉터가 기다리는 작가가 같은 시대에 존재한다. 한쪽에서는 아무도 사지 않아 작품이 보이지 않고, 다른 한쪽에서는 누가 샀다는 사실 때문에 작품이 더 잘 보인다.

그렇다면 '안목'이라는 말을 믿기 전에 질문 하나가 더 필요하다.

누가 이 작가를 발견했는가. 어떤 전시와 비평을 거쳤는가. 누가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선택을 말하는 사람에게 어떤 이해관계가 있는가.

그 질문들을 지나고 나면 다시 작품 앞으로 돌아온다.
보고 있는 것은 작품인가, 그 작품을 둘러싼 사람들의 이름인가.
어느 쪽이 진짜 안목인지 쉽게 판단할 수는 없다.

지금 미술시장에 필요한 것은 좋은 작품을 알아보는 능력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누구의 안목을 믿을 것인지 가려내는 것.

그것 역시 안목이다.

토요경제 / 마리아김 문화전문기자 kimjjyy1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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