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잡았지만 은행은 못 멈췄다…FDS 고도화의 역설
올해 피해 계좌정지는 2배 늘었지만 선제 임시조치는 21% 감소
오탐 민원·법적 공백에 은행권 “면책 기준 구체화해야”
김연수 기자
kys@sateconomy.co.kr | 2026-06-05 11:52:52
AI는 금융사기 이상 징후를 더 정교하게 잡아내고 있다. 그러나 은행의 선제 차단은 오히려 줄었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책임이다. 의심 거래를 멈췄다가 정상 거래로 확인되면 은행이 민원과 분쟁을 떠안을 수 있기 때문이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5월부터 지난달 말까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금융사기 피해 접수에 따른 계좌 지급정지는 총 14만9176건으로 집계됐다. 월평균 1만2000건 수준이다.
올해 들어 증가세는 더 가팔라졌다.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5대 은행의 금융사기 피해 계좌 지급정지는 약 7만2000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두 배 이상 늘었다. 사기 피해가 그만큼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는 의미다.
반면 은행이 이상거래탐지시스템, FDS를 통해 사전에 거래를 제한한 임시조치는 줄었다. 올해 1~5월 5대 은행의 FDS 임시조치는 4만6154건으로 전년 동기 5만8609건보다 21% 감소했다.
금융사기 피해는 늘었는데, 사전 차단은 줄어든 셈이다.
은행들은 최근 AI와 머신러닝, 설명 가능한 AI 등을 FDS에 적용하며 탐지 역량을 높이고 있다. 비정상 이체 패턴, 반복 송금, 대포통장 의심 흐름, 고위험 거래 징후 등을 실시간으로 분석하는 체계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탐지와 차단은 다른 문제다. AI가 이상 징후를 포착하더라도 은행이 곧바로 계좌를 묶기에는 부담이 크다. 사후에 정상 거래로 확인될 경우 고객의 자금 이용을 제한했다는 민원이나 손해배상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최근 금융사기 유형이 복잡해진 것도 은행의 판단을 어렵게 한다. 과거 보이스피싱은 전화나 문자로 피해자를 속여 자금을 이체하게 하는 방식이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투자리딩방 사기, 로맨스스캠, SNS 기반 투자사기, 노쇼사기처럼 정상 거래와 범죄 거래의 경계가 모호한 사례가 늘고 있다.
특히 로맨스스캠이나 투자사기는 피해자가 장기간 심리적으로 조종된 뒤 스스로 돈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겉으로는 본인 의사에 따른 계좌이체처럼 보인다. 은행이 계좌 간 자금 흐름만 보고 실제 사기 여부, 재화·용역 거래 여부, 투자 계약의 실체까지 즉시 확인하기는 어렵다.
결국 은행은 두 가지 책임 사이에 놓인다. 막지 않으면 피해 확산 책임을 지적받고, 막으면 정상 거래 제한 책임을 질 수 있다. AI가 의심 거래를 찾아내도 현장에서 선제 조치가 위축되는 이유다.
금융당국도 이 같은 한계를 인정하고 제도 보완에 나섰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28일 경찰청, 금융정보분석원, 금융감독원, 금융보안원, 금융권 협회, 주요 시중은행 담당자 등이 참석한 ‘금융권 보이스피싱 근절 협의회’를 열고 신종피싱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금융위는 이달 하순부터 노쇼사기, 로맨스스캠, 투자사기 등 신종피싱 범죄에 대해서도 금융회사와 수사기관이 협업해 의심 계좌를 신속히 임시정지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시행할 예정이다.
그동안 통신사기피해환급법상 보이스피싱 범죄에 포함되지 않는 ‘재화와 용역의 거래를 가장한’ 사기범죄에 대해서는 금융회사들이 적극적으로 계좌 임시정지에 나서기 어려웠다. 금융회사는 계좌 간 자금 흐름은 볼 수 있지만, 실제 재화·용역 거래가 있었는지까지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가이드라인의 핵심은 신종피싱 의심 거래를 발견했을 때 은행이 수사기관과 협업해 신속히 임시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사후 피해 구제보다 사전 차단에 무게를 두겠다는 취지다.
금융권 공동 FDS 구축도 추진된다. 개별 은행이 보유한 이상거래 정보만으로는 빠르게 바뀌는 신종 사기 유형을 포착하는 데 한계가 있는 만큼 금융회사 간 공동 탐지 체계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경찰청, 금융회사, 플랫폼 사업자 간 정보 공유도 확대될 전망이다.
다만 현장에서는 가이드라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은행들이 실제로 적극적인 임시조치에 나서려면 면책 기준과 법적 보호장치가 더 구체화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A은행 관계자는 “가이드라인이 현장 판단에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다양한 사례에 적용할 수 있는 면책 기준은 계속 보완될 필요가 있다”며 “금융회사 간 정보 공유와 법적 보호장치가 강화돼야 제도 실효성도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B은행 관계자는 “신종 금융사기는 유형과 거래 방식이 계속 바뀌고 있어 정상 거래와 의심 거래를 사전에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다”며 “금융소비자 보호와 정상 거래 제한 가능성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만큼 고객 소명 절차와 관계기관 협력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결국 AI FDS의 과제는 더 많은 의심 거래를 찾아내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관건은 AI가 잡아낸 위험 신호를 은행이 얼마나 주저 없이 차단할 수 있느냐다.
금융사기 대응의 병목은 탐지 기술이 아니라 실행 책임에 있다. 면책 기준과 정보 공유 체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AI는 위험을 알려도, 은행은 계좌를 멈추지 못하는 역설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토요경제 / 김연수 기자 kys@sat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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