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SMP상한제' 꺼내든 尹정부, '한전 살리기' 속내는?
적자 급등 한전의 재무 개선을 위한 '극약처방'...효과 미미하고 발전사 동반부실 우려
조봉환 기자
ceo@sateconomy.co.kr | 2022-05-25 11:51:42
정부가 적자 급증으로 위기에 빠진 한국전력공사(한전)를 살리기 위해 전력도매가(SMP) 상한제라는 극단적 처방전을 꺼내 들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전력시장 긴급정산 상한 가격' 제도의 신설을 골자로 하는 '전력거래가격 상한에 관한 고시' 등의 일부 개정안을 다음달 13일까지 행정예고한 것이다.
한전이 발전사들로부터 전기를 사오는 계통한계가격(SMP), 쉽게 말해 전력 도매가격의 상한선을 둠으로써 SMP가 천정 부지로 치솟는 상황에서 한전을 지켜주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셈이다.
SMP 가격의 최근 1년 여의 흐름을 보면 정부의 이번 조치는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것은 사실이다. 작년 1월 ㎾h당 70원을 갓 넘었던 SMP가격은 이후 무섭게 치솟기 시작해 작년 10월 100원을 돌파했고, 지난달 200원(202.11원) 벽이 붕괴됐다. 전력도매시장 개설 이후 SMP 월 평균 가격이 200원을 넘은 것은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발전 공기업들과 민간 전력사업자들로부터 전기를 구매해 판매하는 한전의 수지 구조상 SMP 가격의 수직 상승은 실적에 그대로 반영될 수밖에 없다. 한전의 전기 구매비용이 한전 전체 지출의 80%를 넘나들 만큼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SMP 단가가 최근 1년 여 사이에 3배 가까이 뛰었다는 것은 한전 지출이 그만큼 늘어났다는 얘기다.
상황이 이런데도 한전의 수익은 큰 변동이 없다. 한전 수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전기 판매비에 큰 변동이 없는 탓이다. SMP단가가 치솟자 전기요금 인상설이 꾸준이 제기되는 이유다. 그러나, 전기료는 소비자 물가 전체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워낙 커서 정부나 한전 입장에서 쉽게 올리기가 어려운 사안이다.
전력 구매비는 급증했으나 전기요금은 이에 비례해 인상하지 못하면서 한전의 적자는 눈덩어처럼 불어나고 있다. 지난 1분기에만 한전의 적자 규모는 7조8천억원에 육박한다. 지난해 연간 적자액 5조8천억원을 1분기만에 크게 뛰어넘는 사상 최대 규모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연간 적자가 20조원에 달할 것이란 예상까지 나오고 있다.
정부 입장에서는 코로나 팬데믹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시작된 에너지 대란이 더욱 장기화된다면, SMP의 지속적인 상승이 불가항력이란 점에서 위험수위에 도달한 한전을 살리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SMP상한제를 추진하는 셈이다.
정부 입장에서 보면 한전은 가계 부문과 산업계 양쪽 모두에게 미치는 영향이 큰 매우 중요한 공기업이란 점에서, 정부는 더 이상 한전의 부실화를 간과할 수 없다는 절박감이 있다.
한전과 발전사들이 일종의 고통을 분담하라는 의미다. SMP의 상한선을 둠으로써 한전 홀로 떠안았던 부담을 발전사들도 나눠 가지라는 의미다. 산자부 측은 이와관련, “향후 국제 에너지가격의 추가적인 급등 등으로 전력 도매가격이 상승하고 소비자들이 부담해야 할 금액이 급증하는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발전사들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것이 소비자들의 어깨를 가볍게 하기 위해서란 얘기다.
문제는 과연 정부가 극단적으로 내놓은 SMP 상한제가 실효를 거둘 수 있느냐는 점과, SMP상한제로 인한 반대급부로 발전 공기업들의 부실과 민간 발전사들의 경영 악화라는 역풍을 어떻게 차단하느냐는 것이다. 실제 SMP상한제 도입 발표 직후 민간 발전사들은 "한전만 살리겠다는 미봉책에 불과한 조치"라며 강한 반대의 의사를 숨기지 않았다.
민간 발전사의 한 관계자는 "SMP단가의 수직 상승이 수요증가로 인한 시장경제의 논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석탄, 가스, 석유 등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인한 것이란 점에서 한전을 살리기 위해 SMP를 인위적으로 시세 조정을 하는 것은 불합리한 조치"라며 "결국 한전의 실적 개선에도 크게 효과를 못 보고 발전사들의 부실이 가중되는 상황이 일어날 것"이라고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실제 정부의 SMP상한제가 한전의 비용 절감에 얼마 만큼의 효과를 줄 지 미지수다. 그도 그럴 것이 SMP상한제의 내용을 들여다 보면 직전 3개월 동안 SMP평균이 과거 10년 동안의 월별 SMP 평균값의 상위 10%에 해당될 경우 1개월 동안 상한가를 적용하는데, 이 상한가는 10년 가중평균 SMP의 1.25배(125%) 수준으로 정해진다. 이를 현실에 도입해보면 한전의 1달 비용 절감효과는 단 1400억원에 불과하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현재 한전 월 평균 적자액이 2조5천억원을 넘는 현실에 비춰보면 5%도 안되는 수준이다.
SMP상한제로 발전사들의 손실을 일부 보전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에 불만이 일기는 마찬가지다. 상한가격 도입으로 인한 발전 사업자의 과도한 부담을 고려해 연료비가 상한가 보다 더 높은 발전 사업자는 실제 연료비를 제한해서 주겠다는 것인데, 발전사들의 입장에선 연료비 외에 인건비, 금융비 등 판관비 전체가 급증한 상황에서 SMP상한제로 인한 유무형의 손실이 너무 크다며 볼멘소리다.
태양열, 지열, 재생열 등 신재생에너지 사업자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SMP단가에 가중치(REC)를 더해 매출을 일으키는 신재생에너지업체들 역시 비용 부담이 날로 가중되는 상황에서 SMP상한제로 인한 손실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는 실정이다. 결국 SMP가격 급등에 대응해 정부가 내놓은 SMP상한제는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한전을 구하기 위한 미봉책에 불과하다는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 정부가 결코 쉽게 결정할 일은 아니겠지만, 이젠 한시적으로라도 전기요금 인상을 검토하는 것이 오히려 현실적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이유다. 사상 유례 없는 고물가 시대가 이어지고 있지만, 세계적인 에너지 파동으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에서 비롯된 SMP의 고공 비행에 맞춰 이젠 전기요금을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사실 제조 원가가 급등한 만큼 판매단가를 올리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한 이치이지만, 전기의 경우는 좀 예민한 문제다. 가뜩이나 물가 폭등으로 서민들의 부담이 가중되는 마당에 전기요금까지 인상할 경우 전 국민적 비난 여론이 거세질 게 불 보듯 뻔하다. 하지만, 이를 피하기 위해 발전사들에게 고통을 일방적으로 전가하는 것은 향후 전체적인 전력수급시스템 자체에 영향을 미쳐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SMP상한제는 실제 연료비를 일부 보상해준다고 해도 엄연히 한전의 경영 책임을 발전사들이 떠안는 꼴이며, 정부가 한전 구하기에만 초점을 둔 미봉책에 그칠 것"이라며 "발전 공기업들이 정부와 한전 눈치보느라 할말을 제대로 못하고 있지만, 이번 조치가 시행되면 한전과 발전사들의 동반 부실이 불가피해질 것"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전력도매가격 상한제나 주식·부동산 매각 등으로 한전의 적자를 해소한다는 것은 역부족이란 것을 정부 스스로도 잘 알 것”이라며 “원자재비 상승에 맞춰 어느 정도는 전기요금을 조정하고, 이에 앞서 국민들한테 정확히 배경을 설명하고 설득하는 노력에 힘을 집중하는 것이 오히려 현실적인 정부대책"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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