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프리즘] 미분양 주택 발(發) 위기론 현실성 있나
위기 기준선 7만 채 훌쩍 넘은 미분양 주택
분양경기 침체·고금리에 자금난 폐업 잇달아
분양가 인하 등 업계 자구 노력 필요성 지적
이승섭 기자
sslee7@sateconomy.co.kr | 2023-06-04 11:48:00
주택건설업계가 적체된 미분양 주택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작년 이후 본격화된 아파트 미분양 물량이 올 2월 7만5천여 채를 기점으로 소폭 줄어드는 모습이지만 이를 본격적인 ‘미분양 해소 신호탄’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동안 분양을 중단하다시피 했던 건설사들의 6월 분양 물량이 올들어 최고치가 될 전망이지만 이의 상당수는 그동안 연기해 온 물량이어서 밀어내기에 가깝다.
특히 수도권 중심의 인기 지역이나 수혜 단지를 제외하면 분양 성공을 낙관하기 힘들다. 자칫 미분양 물량이 더 늘어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다. 또 올해 1∼5월 전국 아파트 청약률이 평균 7대 1로,작년 하반기 전국 평균 1순위 경쟁률(3.8대 1) 대비 두 배 가까이 증가했으나 지역 별 편차가 심하다.
이렇게 보면 분양 시장이 개선된 것으로 판단하기에는 무리라는 분석이다. 건설업계는 주택 경기가 침체돼 있는 데다 고금리 여파로 심각한 자금난에 빠지면서 중소업체 중심으로 줄 도산 우려를 감추지 못한다. 이런 양상이 장기화할 경우 업계 전체가 생존 위협을 받게 될 것이라는 위기감을 느낀다.
이에 건설업계는 정부가 미분양 주택 매입에 적극 나서줄 것을 바라고 있다. 미분양 물량이 위기 기준선인 7만호를 넘어섰다는 점에서다.
반면 정부는 아직 건설업계가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판단한다. 오히려 건설업계의 자구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문제는 건설업계와 정부 간 미분양 해소를 위한 문법이 다르다는 점이다. 미분양 주택 물량이 임계치를 넘어설 경우 정부의 주택 공급 계획에 영향을 미치고,경제적 파급도 만만치 않아 해결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 미분양 사태 얼마나 심각하나
현재 주택 미분양 상황은 일단 우려할 만한 수준임에는 틀림없다. 국토교통부에 의하면 지난 3월 말 기준 미분양 주택은 7만2104채에 이른다. 전년 동기 대비 2.5배다. 전달(7만5438채)에 견춰 4.5% 소폭 감소했지만 여전히 위험선으로 꼽는 7만 채를 웃돈다.
미분양 물량 감소는 분양 시장이 개선됐다기 보다 건설사들의 분양 연기 탓이 크다. 최근 한국주택학회의 보고서는 사태의 심각성을 대변해 준다.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월 기준이기는 하지만 수도권 미분양 물량은 전년 동기 대비 825.3% 폭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2년 이후 가장 많다. 지방도 마찬가지로 전년 동기에 비해 209% 급증했다. 전국 초기 분양률도 올해 1분기 기준 49.5%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분양시장뿐만 아니라 청약 시장도 마찬가지다.
부동산R114에 의하면 올해 1∼5월 전국 65개 단지 분양에서 1, 2순위 내 청약이 마감된 곳은 절반도 안되는 30개 단지에 불과했다. 그렇다고 해서 위기론을 거론할 만큼 미분양 사태가 위험한 수준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시작된 2008년 미분양 물량은 16만가구를 넘었다. 부동산가격이 안정됐던 2012~2019년까지의 평균 미분양 주택 수가 6만여 가구였던 것을 감안하면 그리 우려할 수준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 주택업계 발(發) 위기 현실화될까
부동산 경기 침체와 고금리 탓에 자금난에 빠진 건설업체들이 늘고 있다. 재무 건전성이 취약한 건설사가 전년보다 두 배 가량 늘어난 가운데, 이 중 60% 이상은 영업이익으로 은행 이자조차 내기 어렵다고 한다.
이자보상배율(영업이익을 이자 비용으로 나눈 비율)이 1미만인 건설사들이 적지 않다는 것은 그만큼 부실 위험 건설사들이 많다는 방증이다.
최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보면 시공능력평가 30위권 이내 상장 건설사 18개사 가운데 작년 부채비율(연결기준)이 전년 대비 높아진 업체가 12개에 이른다. 이는 분양 경기 침체로 인해 현금 유동성이 그만큼 악화됐다는 의미다. 폐업한 건설사도 크게 늘었다.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KISCON)에 의하면 올해 1∼4월 폐업한 건설사는 826개다. 전년 동기보다 28% 증가했다. 분양 경기가 회복되지 않을 경우 지방 중소형 건설사의 줄도산 우려가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정부의 1.3 규제 완화 조치 이후 수도권 분양 시장은 조금씩 개선되는데 반해 지방은 여전히 미분양에 시달리고 있기 떄문이다.
결국 건설업계 자금난은 분양 경기 침체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다. 분양 미수금까지 늘고 있는 것도 악재다. 분양을 마친 아파트도 계약자들이 중도 금 연체나 잔금 지연 사례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 업계 자구 노력 요구하는 정부
반면 정부는 건설업계가 ‘미분양 발 위기’가능성을 내세워 대책 마련을 호소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결을 보인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지난 3월 한 경제심포지엄에서 미분양 물량 10만 채까지는 각오하고 있다”고 밝힌 데서 잘 드러난다. 작년 말 “20년 장기 미분양 주택의 평균인 6만2000채를 위험선으로 본다”는 입장에서 크게 후퇴한 셈이다.
국토부의 이런 시각은 미분양에 따른 건설사의 어려움이 금융위기로 확대될 가능성이 낮고, 최근 부동산 시장도 조금씩 회복되고 있는 것에 기반을 둔다고 볼 수 있다.
또 국민 세금으로 미분양 주택을 매입할 경우 건설업체들의 도덕적 해이와 형평성 등의 논란의 여지가 다분하다는 것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는 것도 배경으로 작용한다. 국토연구원이 최근 전국 6680가구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정부의 미분양 주택 직접 매입에 대해 열에 여덟 명 꼴로 부정적 입장을 드러낸 것을 보면 그렇다.
결국 건설업계가 먼저 원가 절감과 고분양가 인하 등의 자구 노력에 나서는 게 시장경제 원리에 합당하다는 취지다. 여기다 현재 미분양 상황이 금융시장 등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도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또 시장의 연착륙에 대한 기대감도 뒷배가 되고 있다. 정부의 규제 완화 대책이 시장에서 효과를 보이고 있다는 판단이다. 작년 하반기 이후 내리막길을 걸었던 서울 아파트 가격이 오르고 거래량이 증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주택사업 경기전망지수도 개선되는 추세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51주동안 하락세였던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지수는 5월 넷째주 0.03% 올랐다. 서울 아파트값 상승은 1년 만이다. 또 지난 4월 서울 지역 아파트 거래량도 3000건에 육박해 1년8개월 만에 최고치였다.5월 서울 주택사업경기전망지수도 전달보다 28.6포인트 상승한 106.6을 기록했다.
■ 건설업 침체 막을 방안 필요해
건설사들이 자금난에다 고금리가 지속될 경우 주택건설 착공 부진에 따른 공급 물량이 올해 5%, 내년에는 8~9% 이상 줄어들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또 최근 KDI(한국개발연구원)는 보고서를 통해 주택건설 위축은 경제성장률을 올해 0.3%P, 내년에는 0.4~0.5%P 감소시킬 수 있다고 전망했다. 가뜩이나 국내외 기관들이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잇따라 하향하고 있는 것과 맞물려 불안감을 키운다.
주택업계는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올해 미분양주택이 10만 채를 훨씬 뛰어 넘어 12만 채 이상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정부의 미분양 주택 매입 등 대책 마련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이유다.
앞서 지난 1월말 정원주 주택건설협회 회장은 “주택경기가 어려워지면서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주택경기 발 위기론을 거론했다. 다만 건설업계에 닥친 자금난은 계속된 고금리 탓도 있지만 부동산 호황기를 거치면서 무리하게 투자한 것이 요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도 현 위기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측면에서, 분양가 할인 등 자구 노력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정부도 건설업계의 위기 극복 노력을 전제로 미분양 주택 매입 무주택자에게 취득세나 양도소득세 감면 혜택을 주는 방안 등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부동산 시장 연착륙을 위해 분양시장 정상화를 서둘러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은 귀담아들을 만하다.
토요경제 / 이승섭 기자 sslee7@sat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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