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계좌 한도, 카드 만들면 풀려요”…시중은행 영업 관행 ‘빈축’

은행권, 대포통장 악용 예방 위해 신규계좌 일일 30만원 한도 운영
복잡한 서류 발급, 신규 고객에게 ‘신용카드 발급’ 권유하기도
은행권 “한도 계좌 해제 영업점 재량…각자 가이드 정해 운영”

김자혜

kjh@sateconomy.co.kr | 2023-10-10 11:44:37

▲ 2016년부터 은행권에선 대포통장 악용을 막기 위해 일일 이체한도 30만원을 운영하고 있다. 일부 은행에선 신규거래고객에 신용카드 발급시 즉시 한도를 해제해준다. 법적 제도가 별도로 없어 은행마다 영업방침이 다르게 적용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여의도에 있는 직장에 다니는 정○○ 씨(29세)는 최근 회사 급여통장을 교체하기 위해 국민은행 영업점에 방문했다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을 겪었다. 창구 직원에게 일일 이체 한도 30만원을 풀고 싶다고 하자, 직원은 3개월 치 급여 명세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 씨가 결정을 망설이자, 이 직원은 과정이 번거롭다면 신용카드를 발급해 한 번에 계좌를 해제할 수 있다며 카드발급을 권유하고 상품도 소개했다. 정 씨는 서류제출이 필요한 어려운 일이 카드발급으로 한 번에 가능하다는 게 의아했다.

 

최근 국내 시중은행들이 보이스피싱에 대포통장이 악용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도입한 ‘신규 계좌 이체 한도’ 제도를 자사 상품을 판매하는 영업에 활용하고 있어, 제도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권에서는 2016년부터 보이스피싱에 대포통장이 악용되는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신규 계좌 이체・출금 한도’ 30만원을 유지하고 있다. 신규 계좌 일일한도 해제를 위해 금융거래 목적 확인서와 증빙서류의 제출을 의무화하고 있는데, 개인에게 재직증명서, 급여명세표 등을 요구하고 법인에는 납세증명서, 물품공급계약서 등을 받고 있다.

 

서류를 제출하지 않으면 은행 신규 계좌 발급 시 인터넷뱅킹의 1일 이체 한도는 30만원, ATM기 30만원, 창구거래 100만원으로 제한된다.

 

은행 직원이 정씨에게 서류를 제출한 것도 이 같은 규정 때문이다. 하지만 은행이 신용카드 발급을 요구하는 것이 불법은 아니라는 게 은행권의 설명이다. 신용카드 발급은 비교적 쉽게 신규 거래 고객의 신용도를 확인할 수 있는 방편이라는 것이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한도 계좌 해제는 영업점 재량에 달려있고 각자 가이드를 정해서 운영한다”며 “신용카드 발급 기준을 충족하는 신규거래자는 직장이나 소득, 신용이 분명해 대포통장을 이용하지 않는다고 판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소비자단체에서는 은행이 신용카드 발급을 통해 소비자에 편의성을 높여준다고 하더라도 금융사기를 예방하려는 본 취지에서는 어긋한 행위라고 보고 있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부회장은 “금융사기 예방 차원에서 신규 계좌 한도 이용을 제한해 놓고 신용카드를 발급해 이를 영업에 활용하는 것은 잘못된 관행”이라며 “본연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금융사기 예방을 위해서는 신규 거래 계좌 한도보다 대포통장 개설 등 범죄 가담 시 벌금, 징역, 민사소송 책임 등 처벌 강화를 안내하는 것이 효과적이다”라고 덧붙였다.

 

토요경제 / 김자혜 기자 kjh@sat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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