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정용진 신세계 회장에게 ‘기업가의 품격’을 기대한다
양지욱 기자
yjw@sateconomy.co.kr | 2025-10-13 09:40:50
[토요경제 = 양지욱 기자] 미국 트럼프 2기 정부가 출범하면서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은 한때 ‘한미 경제외교에 힘을 보탤 핵심인사’로 기대를 모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장남 주니어 트럼프와 친분이 두텁고 한국 정·재계에서는 드물게 미국 보수권 핵심 인맥과 연결돼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그 기대는 우려로 바뀌고 있다. 그가 연결된 인맥의 성격이 단순한 네트워킹을 넘어 ‘극우 정치의 본질’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정 회장은 트럼프 2기 당선인 시절 트럼프 주니어 초청으로 플로리다 마러라고 리조트를 방문해 국내 정·재계 인사 중 최초로 트럼프와 직접 소통했다.
올해 1월 트럼프 취임식과 프라이빗 행사에 참석하며 벤처 투자기업 ‘1789 캐피탈’의 오미드 말릭과 크리스토퍼 버스커크, 그리고 트럼프 정부의 인공지능·암호화폐 정책을 이끈 데이비드 삭스, 국무장관 마크 루비오 등과 만남을 이어갔다.
당시 언론에서는 정 회장의 광폭 행보에 기대와 찬사를 보냈다. 계엄과 탄핵 정국으로 인한 대통령 부재로 정부와 미국의 소통 창구가 막힌 상황에서 정 회장의 인맥이 한미관계에 긍정적 가교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정 회장이 만났던 이들은 모두 미국 내 극우적 담론을 주도하는 인물로, 공화당조차 경계하는 ‘마가(MAGA, 미국을 위대하게)’ 세력의 핵심 인사들이다.
문제는 이러한 교류가 단순한 사적 친분을 넘어 정치·이념 네트워크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 회장이 후원한 ‘록브리지코리아’와 ‘빌드업코리아’는 모두 트럼프식 복음주의와 민족주의를 표방하는 한국의 종교·정치 네트워크 단체다.
특히 빌드업코리아는 “사회주의 정부가 한미동맹을 파괴했다”, “선거 부정이 있었다”는 음모론을 퍼뜨려온 조직이다.
신세계그룹 측은 “개인적 차원의 후원일 뿐 정치적 목적은 없다”고 해명했지만, 그가 방미 중 만난 인사 대부분이 해당 네트워크의 후원자이거나 스피커로 활동한 사실은 이미 공개된 사실이다.
기업 총수가 종교적 신념이나 정치적 철학을 가질 자유는 존중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사회적 분열과 혐오의 언어를 확산시키는 통로로 작동할 때, 문제는 단순한 ‘개인의 취향’이 아니라 ‘기업 리스크’가 된다.
신세계그룹은 이마트·스타필드·신세계백화점 등 국민 생활과 맞닿은 소비 브랜드를 다수 보유하고 있다. 소비자 신뢰가 곧 자산인 그룹의 총수가 극우 담론과 연결된 이미지로 비춰진다면, 그 영향은 주가나 이미지 훼손을 넘어 소비자 이탈로 직결될 수 있다.
정 회장은 과거에도 “멸공”, “우리의 적은 공산당”과 같은 정치적 발언으로 논란을 빚은 바 있다. 당시에는 일시적인 해프닝으로 넘어갔지만, 이번 논란은 단순한 ‘개인 SNS 발언’의 수준을 넘어선다.
트럼프 진영과의 교류가 ‘한미관계 개선’이 아니라 ‘미 극우 담론의 한국 통로’로 귀결된다면, 이는 한국 재계의 공공성과 윤리 의식에도 적신호를 켜게 된다.
기업인이 개인적인 정치적 신념을 앞세우는 순간, 기업의 자본은 사회를 치유하는 방향으로 쓰일 수도, 분열시키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
지금 정 회장에게 필요한 것은 트럼프의 친구가 아니라, 한국 소비자의 신뢰를 지키는 기업인으로서의 자각이다. 신앙의 자유와 사회적 책임은 대립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균형을 잃는 순간, 시장은 냉정하게 등을 돌린다. 기대가 우려로, 가교가 벽으로 바뀌기 전에 정 회장이 ‘기업의 품격’을 되찾길 바란다.
토요경제 / 양지욱 기자 yjw@sat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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