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원 칼럼] 한화그룹, 이사회 의장 자리를 내놓은 이유

김승원

ksw9030@naver.com | 2026-10-15 11:06:57

▲ 김승원 토요경제신문 상무

기업은 잘한 일만으로 평가받는 게 아니다. 비판을 받은 뒤 무엇을 바꿨는지도 중요하다. 잘못을 인정하고 제도를 고쳤다면 그 변화 역시 평가받아야 한다. 최근 한화그룹에서 눈여겨볼 대목이 여기에 있다.

㈜한화는 지난 14일 권익환 독립이사를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했다. 오너나 경영진이 아닌 독립이사가 이사회를 이끌게 한 것이다. 한화솔루션은 이미 2024년부터 독립이사가 의장을 맡고 있다. 

 

한화시스템과 한화오션도 독립이사 의장 체제로 전환하고,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한화엔진도 내년 상반기까지 같은 방향으로 이사회 구조를 손질할 계획이다.

의장 한 사람을 바꾼다고 지배구조가 하루아침에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의미는 다른 데 있다. 경영진에 집중됐던 권한을 이사회와 나누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한화는 독립이사들로 구성하는 특별위원회도 만들기로 했다. 주주 간 이해가 충돌하거나 사회적 관심이 큰 사안을 독립이사들이 먼저 들여다보도록 했다. 계열사별 이사회 사무국도 설치해 이사회가 경영진이 제공한 정보에만 의존하지 않고 판단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런 움직임은 최근 한화가 시장에서 받은 지적을 생각하면 더욱 눈에 띈다.

한화솔루션은 올해 2조4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추진했다가 금융감독원의 정정 요구와 시장의 비판을 거쳐 규모를 1조7000억원으로 낮췄다. 소액주주들의 반발도 적지 않았다.

기업이 시장과 충돌하는 일은 있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다.

한화는 비판 이후 이사회 독립성을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독립이사가 의사봉을 잡고, 민감한 안건은 독립이사들이 별도로 검토하며, 이를 뒷받침할 조직까지 만들겠다는 것이다. 제대로 작동한다면 경영진을 견제하고 주주의 목소리를 이사회 안으로 끌어들이는 장치가 될 수 있다.

비슷한 흐름은 현장 안전에서도 나타난다.

㈜한화 건설부문은 15일 건설현장 안전신문고에 음성인식과 인공지능 사진분석 기능을 추가했다. 근로자가 휴대전화에 설정된 언어로 위험 상황을 말하면 신고 내용이 자동으로 입력되고, 현장 사진을 올리면 AI가 위험요인과 개선대책을 제시한다.

기술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신고의 문턱을 낮췄다는 점이다.

건설현장에서 위험을 발견하는 것만으로 사고를 막을 수는 없다. 발견한 사람이 쉽게 알릴 수 있어야 하고, 그 목소리가 현장 관리자에게 신속하게 전달돼야 한다. 외국인이나 고령 근로자가 문자 입력의 불편 때문에 신고를 망설였다면 이를 없애는 것도 안전관리다.

변화는 거창한 곳에서만 시작되지 않는다. 현장의 작은 불편을 없애는 데서도 시작된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최근 창립기념사에서 안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후 건설현장에서는 실제 신고체계를 손질했다. 구호가 제도로 이어졌다는 점은 분명 평가할 만하다.

이사회 의장 분리와 안전신문고 고도화는 전혀 다른 일처럼 보인다. 그러나 공통점이 있다.

위에서는 권한을 나누고, 아래에서는 목소리를 더 쉽게 들을 수 있도록 했다.

좋은 지배구조는 최고경영자가 모든 판단을 잘하는 구조가 아니다. 잘못된 판단을 견제할 수 있는 구조다. 좋은 안전관리도 경영진이 안전을 강조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현장의 가장 작은 위험 신호까지 올라올 수 있는 통로를 만드는 것이다.

물론 아직 평가는 끝나지 않았다.

독립이사가 의장을 맡았다고 이사회가 저절로 독립되는 것은 아니다. 특별위원회가 실제 이해관계가 첨예한 사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지켜봐야 한다. AI 안전신문고 역시 이용률과 사고 예방 효과로 성과를 입증해야 한다.

그럼에도 방향은 분명하다.

기업의 진짜 변화는 선언문보다 조직과 제도에서 확인된다. 비판을 받았을 때 방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의사결정 구조와 현장의 시스템을 바꾼다면 그 노력은 인정할 필요가 있다.
 

과즉물탄개(過則勿憚改). 잘못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리지 말라는 뜻이다. 기업도 다르지 않다. 한화가 지금 보여주는 건 완벽함이 아니라, 잘못된 것을 고쳐나갈줄 아는 힘이다.

 

토요경제 / 김승원 ksw903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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