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형 칼럼] 광동제약의 ‘유사언론 대응’ 논의가 던지는 질문, 비판 보도는 어디까지 허용되는가
'유사언론’낙인과 허위조작정보근절법 사이에서 흔들리는 언론의 감시 기능
이덕형 기자
ceo119@naver.com | 2026-01-07 10:28:05
언론의 보도 기능은 본질적으로 사실 보도와 비판을 전제로 한다. 그 비판이 사실에 근거하지 않거나 명백한 왜곡일 경우, 언론에는 이미 수정·정정보도 제도와 언론중재 절차라는 제도적 장치가 존재한다. 기사가 문제라면 기사로 다투고, 조정과 중재를 통해 바로잡는 것이 법치국가에서의 정상적인 순서다. 이를 건너뛰고 ‘유사언론’이라는 낙인을 먼저 찍는 순간, 문제는 언론의 일탈이 아니라 기업의 권력 사용으로 성격이 바뀐다.
더욱 혼란스러운 지점은 법 해석의 모순이다. 기업이 위법 행위를 저질렀을 때, 우리는 대표이사에게 책임을 묻는다. 중대재해처벌법 역시 현장의 실무자가 아니라 대표이사를 책임 주체로 명시한다. 그런데 대표이사가 책임 주체인 사안에서, 대표이사의 사진을 기사에 사용했다는 이유만으로 ‘부당한 보도’가 된다면 논리는 스스로 붕괴한다. 책임은 지되, 책임의 얼굴은 가리라는 요구가 과연 상식적인가. 그렇다면 법은 책임자를 처벌하면서도, 사회는 그 책임자를 보지 말아야 하는 기묘한 구조가 된다.
‘유사언론’의 기준은 어디에 있는가. 기업에 우호적이면 정상 언론이고, 불리하면 유사언론이라는 잣대는 지나치게 편의적이다. 언론은 기업 홍보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기업의 99가지 공덕보다 1가지 잘못이 기사화되는 이유는, 사회적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개가 사람을 물면 기사가 아니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기사다”라는 오래된 언론 격언은 선정성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비정상적 권력 행위가 공적 감시의 대상이 된다는 의미에 가깝다.
한국 언론이 모두 비참한 수준이라는 인식 역시 과장이다. 대다수 언론은 사실 확인을 기본으로 보도하고, 문제가 제기되면 수정과 반론의 절차를 밟는다. 비판과 검증을 수행하는 언론을 ‘유사언론’으로 규정하는 순간, 언론 환경은 정화되는 것이 아니라 위축된다. 건강한 언론 생태계는 비판을 제거함으로써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불편한 질문을 견뎌내는 태도에서 신뢰는 쌓인다.
법은 허위와 조작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여야 한다. 비판을 차단하는 방패로 사용되는 순간, 그 법은 공익이 아니라 권력의 도구로 오해받게 된다. 기업이 진정으로 신뢰를 원한다면, 불리한 기사와 마주하는 방식부터 다시 점검해야 한다. 비판을 적으로 돌리는 순간, 언론도 기업도 모두 설 자리를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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