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크]기름값·곡물값, '전쟁' 전 회귀?...치솟는 물가 꺾일까

유류 이어 곡물 시세 급락, 물가 관리에 '청신호'...추석 앞두고 밥상물가 들썩이는게 변수

조봉환 기자

ceo@sateconomy.co.kr | 2022-08-08 10:00:48

▲ 국제유가가 하락세를 보이며 우크라이나전쟁 전으로 돌아와 천정부지의 물가가 꺾일지 주목된다, <사진=연합뉴스제공>

 

물가와 마치 전쟁을 벌이고 있는 듯한 미국의 강력한 연속 '자이언트스텝'(기준금리의 0.75% 인상)의 영향일까. 아니면 전세계로 확산하고 있는 글로벌 경기 침체에서 비롯된 전반적인 수요 감소 탓일까.


우크라이나전쟁 발발 이후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며 세계 각국의 물가 상승과 인플레이션을 촉발시킨 주 원인인 국제 유가와 곡물 가격이 최근 눈에 띄는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유류와 곡물류는 그 자체로 효용성을 지니는 동시에 다양한 파생 상품을 만들어내는 원재료이다. 국제유가와 국제곡물가 상승이 전체적인 물가를 끌어올리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유류와 곡물류의 국제 시세 하락 현상이 두드러짐에 따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물가를 진정시키는 결정적인 촉매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우리나라는 유류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한다. 곡물류도 자급자족이 가능한 쌀 등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수입 비중이 매우 높다. 때문에 국제유가와 곡물가의 하락을 계기로 천정부지의 물가가 꺾이는 전환점을 만들 수 있을 지 주목된다.

6개월만에 80달러대로 돌아온 원유
우선 국제유가는 최근 하락세가 뚜렷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원유 수급 체계에 심각한 균열이 생기며 한때 배럴당 130달러에 육박했던 국제유가가 6개월여만에 다시 80달러대로 주저앉았다. 우크라아니전쟁 이전으로 회귀한 것이다.


지난 4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의 9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거래 가격은 배럴당 88.54달러다. WTI 종가가 배럴당 90달러 아래로 형성된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진 지난 2월 10일 이후 처음이다.


이달 1일만해도 배럴당 97.33달러로 시작한 WTI 가격은 며칠새 10% 가까이 폭락한 것이다. WTI시세 하락으로 영국 브렌트유, 두바이유 등 전세계 원유가격의 동반하락세로 이어질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다.


실제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10월물 브렌트유 가격은 같은날 전일대비 -2.75% 하락, 94.12달러에 거래됐다. 장중 한때 배럴당 93.20달러까지 내려가면서 지난 2월 21일 이후 최저가를 찍었다. 우리나라 수입 원유의 기준이 되는 두바이유의 지난 주 평균 가격도 전주 대비 5.6달러 내린 배럴당 98.4달러를 나타냈다.


국제유가가 완연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경기 침체 우려가 확산하면서 미국 등 주요국의 휘발유와 경우 수요가 급감한데다, 원유 재고량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방국가들이 러시아에 가했던 제재 조치가 에너지파동을 야기, 최근 이를 완화해 실질적인 공급이 늘어나는 효과로 이어졌다. 이와함께 리비아의 석유 생산량 회복 등도 국제유가 하락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이처럼 국제유가가 총체적으로 가파른 하락세를 보이면서 국내 기름값도 빠르게 떨어지고 있다. 7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서비스 오피넷에 따르면 6일 기준 보통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리터(L)당 1852.00원을 기록했다.


휘발유 평균가는 지난 6월 30일 2144.90 정점을 찍은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추세다. 지난달 21일 2000원벽(1989.93원)이 무너진 이후 하락세가 빨라지고 있다. 현재 일선 주유소에서 판매하는 휘발윳값은 1800원대이다.


심지어 2000원대 중반에서 거래되던 서울 및 수도권 지역도 1700원대에 판매하는 주유소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상황이다. 휘발윳값보다는 100원 이상 차이가 나지만, 경윳값도 비슷한 폭으로 하락하며 전쟁전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국내 기름값이 빠르게 하락하며 진정 국면을 보이고 있는 것은 국제유가가 예상보다 큰 폭으로 떨어진데다가 정부가 유류세 인하폭을 법정 최고한도까지 낮춘 것이 효과를 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 휘발유와 경유 가격은 이번 주에도 완만한 하락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 시세 하락분이 점진적으로 소비자 가격에 반영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국은행이 기준 금리를 대폭 인상, 전반적인 유류 소비가 둔화되고 있다.


유가가 고점 대비 20% 안팎 하락한데 이어 추가 하락이 점쳐짐에 따라 유류세 탄력세율 조정범위를 50%로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하는 교통에너지환경세법 일부 개정안이 시행될 가능성이 낮아졌다. 휘발윳값이 정의 목표 수준 이하로 내려갈 가능성이 커진 데다 세수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세계적으로 공급은 늘고 있는데 수요는 빠르게 감소하고 있어 수요공급의 원칙상 가격은 계속 떨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며 "국제유가의 하락이 물가 안정 등 우리 경제 전반에 미치는 효과가 매우 광범위하게 나타날 것"이라고 진단했다.

▲ 국제유가 하락으로 2천원대를 훌쩍넘던 휘발윳값이 1700원대까지 주저앉았다. <사진=연합뉴스제공>

우-러 곡물수출 재개로 금융위기 후 최대 낙폭
국제유가 못지않게 세계 각국의 물가를 치솟게 만든 주범이었던 곡물가격도 최근 급락세를 보이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곡물가격 폭등의 도화선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세계 최대의 곡물 수출국인데, 양국간의 전쟁으로 곡물수출에 심각한 차질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최근 양국이 종전이나 휴전에 상관없이 흑해 항만을 통한 곡물 수출을 재개하는 데 합의, 무섭게 치솟던 세계 식량 가격이 약 24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다. 여기에 글로벌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대부분의 곡물 수요가 급감하면서 곡물가격이 가파른 우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발표한 지난 7월 세계식량가격지수는 전월 대비 8.6% 하락한 140.9포인트를 기록했다. FAO는 1996년 이후 24개 품목에 대한 국제가격 동향을 모니터링, 곡물·유지류·육류·유제품·설탕 등 5개 품목군별 식량가격지수를 매월 집계해 발표한다.


세계식량가격지수는 우크라이나 전쟁 직후 지난 3월 역대 최고치인 159.7까지 치솟았으나 6월까지 차츰 하락하더니 7월에 5개 품목 지수가 일제히 하락, 2008년 10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큰 낙폭을 기록한 것이다.


품목별로 보면 무엇보다 곡물가격지수가 전달보다 11.5% 하락했다. 흑해 항구 봉쇄 해제 합의와 북반구의 수확 진행 등으로 인해 국제 밀가격이 크게 떨어진 것이 전체적인 곡물 가격 하락을 주도한 것으로 해석된다.


유지류 지수는 무려 19.2% 떨어졌다. 특히 국내 수요가 많은 팜유의 경우 세계 최대 수출국인 인도네시아의 공급 여력이 충분할 것으로 전망, 향후 지속적인 하락이 예상된다. 대두유와 유채씨유 역시 수요는 줄고 공급능력이 늘어나 추가 하락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농식품부는 "주요 수출국의 작황이 빠르게 개선되고 있고, 글로벌 경기침체에 따른 소비 저하 가능성 등으로 국제곡물가격이 6월 이후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며 "8월 이후에는 상반기보다 가격이 더 하락할 전망"이라고 관측했다. 특히 제분, 사료, 전분당, 대두 가공 업계가 10∼11월까지의 사용 물량을 재고로 확보, 수급 조건 개선에 따른 추가하락이 예상된다는게 정부의 판단이다.

추석 앞두고 안오른게 드믄 '밥상물가'
물가를 밀어 올리는 영향력과 파급효과 가장 큰 국제 유가와 곡물가격이 급락세로 돌아섬에 따라 IMF시대를 소환하며 천정부지로 치솟던 국내 물가가 점차 안정세를 찾아갈 것이란 기대의 목소리가 높다. 

 

특히 정부출범 이후 물가관리에 애를 먹던 정부로서도 유류와 곡물류의 수입 가격 하락이 향후 물가를 잡는 데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섣부른 예단이 금물이다. 유가와 곡물가 하락만으로 전체 물가가 단기간에 유의미한 하락세로 돌아설 것이라고 판단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무엇보다 내달 추석을 앞두고 밥상물가가 들썩이고 있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7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7월 식료품 및 비주류 음료 물가지수는 113.12(2020년=100)로 1년 전보다 8.0% 올랐다. 최근 안정세를 보이던 식품 물가가 작년 2월 이후 1년 5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상승한 것이다.


특히 무려 34.7%가 오른 식용 유지를 필두로 전체적인 가공식품과 채소·해조류(24.4%) 등 신선 식품 물가가 크게 올라 전반적인 물가 상승세를 견인했다. 

 

품목별로 식용유 가격이 1년 새 55.6% 급등했고 밀가루 가격은 36.4%, 부침가루 가격은 31.6% 각각 올랐다. 국내 소비량이 많은 국수(32.9%), 라면(9.4%), 빵(12.6%)과 햄·베이컨(8.0%), 기타 육류 가공품(20.3%) 등 가공식품류 가격도 일제히 오름세를 보였다.

 

추석 성수품 가격이 줄줄이 오르고 있는 것도 주목된다. 배추(72.7%)를 필두로 무(53.0%), 수입쇠고기(24.7%), 돼지고기(9.9%), 닭고기(19.0%) 등 축산물도 줄줄이 상승세를 이어갔다. 양파(18.8%), 마늘(11.7%), 감자(41.1%) 등도 최근 생산량이 감소, 높은 가격 수준을 보이고 있다.


밥상물가와 직결되는 오이(73.0%), 시금치(70.6%), 상추(63.1%), 부추(56.2%), 미나리(52.0%), 파(48.5%), 양배추(25.7%) 등 최근의 폭염 여파로 안오른 품목을 찾기 어려운 지경이다. 롯데제과, 빙그레, CJ제일제당, 동원F&B 등 가공식품업체들도 최근 약속이나 한듯 공급 가격을 대폭 인상, 서민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한번 오른 공산품 가격은 쉽게 떨어지지 않는 속성이 있다. 채소류는 작황에 따라 급락할 여지가 있지만, 공산품은 상황이 다르다. 국제 밀가격 급락의 영향이 실제 소비자물가에 영향을 미치기엔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전문가들은 "국제유가와 곡물가격이 급락하고 있는 것은 중장기적인 물가관리 측면에선 분명이 좋은 징후임에 틀림없다"면서도 "추석시즌을 맞아 8월 물가에 큰 변동은 없을 것이며, 이런 추세라면 9~10월경에 물가가 눈에띄게 꺾일 개연성은 충분해보인다"고 관측하고 있다.

 

토요경제 / 조봉환 기자 ceo@sat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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