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원 칼럼] LG 상생은 아래로 흐른다

김승원

ksw9030@naver.com | 2026-07-10 10:04:24

▲ 김승원 토요경제신문 상무

 

상생은 구호가 아니라 물길이다. 윗논에만 물이 고이면 아랫논은 마른다. 아랫논이 마르면 결국 마을 전체의 수확도 줄어든다. 기업 생태계도 다르지 않다. 대기업과 1차 협력사만 좋아서는 산업이 튼튼해지지 않는다. 2차, 3차 협력사까지 돈이 제때 내려가야 공급망이 산다.

그런 점에서 LG그룹의 최근 상생협약은 칭찬할 만하다. 단순한 기부나 행사성 발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LG는 1·2·3차 협력사와 상생협약을 맺고 2차 이하 협력사까지 금융·복지 지원을 넓히기로 했다. 900억원 규모의 동반성장펀드를 2차 이하 협력사에 지원하고, 상생결제 낙수율도 10% 이상으로 높이기로 했다. 약 1300개 협력사가 혜택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조치의 핵심은 돈의 속도다. 중소 협력사에 가장 무서운 것은 적자가 아니라 '돈맥경화'다. 물건은 납품했는데 대금이 늦게 들어오면 임금, 원재료비, 이자, 전기료가 동시에 압박한다. 장부상 매출이 있어도 통장에 돈이 없으면 회사는 버티기 어렵다. 그래서 진짜 상생은 멋진 표어가 아니라 대금 지급에서 시작된다.

대기업 상생은 그동안 주로 1차 협력사 중심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산업의 실제 밑단은 2차, 3차 협력사에 있다. 이들은 대기업과 직접 거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협상력은 약하고, 금융비용은 높고, 대금 지급 조건은 불리하다. 공급망의 가장 약한 고리가 여기서 생긴다. LG가 이번에 2차 이하 협력사를 직접 상생의 대상으로 끌어올린 것은 이 지점을 건드린 조치다.

1차 협력사에서 물길이 멈추면 2차, 3차 협력사는 마른다. 작은 부품업체가 흔들리면 완제품 기업도 흔들린다. 한 곳의 납기 지연이 전체 생산 차질로 번진다. 한 곳의 기술 인력 이탈이 품질 문제로 이어진다. 대기업의 경쟁력은 본사 건물 안에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협력사 공장, 연구실, 납품 차량, 현장 노동자의 손끝에서 함께 만들어진다.

삼성도 최근 6700개 협력사와 상생협약을 맺고 자금·기술·인력 지원을 강화했다. 석유화학업계도 중소 고객사 부담을 낮추기 위해 일부 제품 공급가를 한시적으로 인하했다. 이런 흐름은 중요하다. 한국 산업이 이제 상생을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경쟁력의 문제로 보기 시작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특히 지금은 공급망 경쟁의 시대다. 반도체, 배터리, 자동차, 디스플레이, 석유화학 모두 혼자 잘해서는 이길 수 없다. 글로벌 기업은 납기, 품질, 원가, 탄소, 안전, 인권까지 공급망 전체를 본다. 2차, 3차 협력사가 약하면 대기업의 수출 경쟁력도 약해진다. 협력사의 현금흐름을 돕는 일은 선행이 아니라 산업 기반을 지키는 일이다.

물론 상생협약 하나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이행이다. 900억원 지원이 실제 필요한 기업에 닿는지, 상생결제 낙수율 10% 이상 목표가 숫자로만 끝나지 않는지, 1차 협력사도 하위 협력사에 같은 기준을 적용하는지 계속 봐야 한다. 상생은 발표보다 실행이 어렵다. 그래서 더 자주 점검해야 한다.

그래도 이번 LG의 선택은 방향도 맞아 좋은 선례가 될 듯하다. 위에서 아래로 돈이 흐르게 하는 일, 1차에서 멈춘 상생을 2차와 3차로 내리는 일, 협력사를 비용이 아니라 생태계로 보는 일은 세계를 호령하는 한국 산업에 꼭 필요하다. 

큰 나무는 줄기만으로 서 있지 않다. 땅속 잔뿌리가 넓고 깊어야 바람을 견딘다. 대기업이 줄기라면 협력사는 뿌리다. 뿌리에 물이 가지 않는 나무는 오래 버티지 못한다. LG의 이번 상생협약이 의미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상생은 위에서 선언할 때가 아니라 아래까지 도착할 때 완성된다.

 

토요경제 / 김승원 ksw903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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