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회장 ‘AX 생존론’ 실행…롯데이노베이트, AI 에이전트 10종 공개
가격·수요 예측부터 석유화학 전망까지…롯데 내부 실증 거쳐 대우건설로 외연 확대
양지욱 기자
yjw@sateconomy.co.kr | 2026-07-17 09:34:57
롯데이노베이트가 범용 인공지능(AI) 비서를 넘어 계열사의 실제 사업 문제를 해결하는 산업별 AI 에이전트를 내놓았다. 식품·유통·화학·인프라를 두루 보유한 롯데그룹을 시험대로 삼아 기술을 검증하고, 이를 외부 기업에 판매하는 구조도 구체화하고 있다.
롯데이노베이트는 지난 15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열린 ‘2026 하반기 롯데 VCM(Value Creation Meeting·가치창출회의)’에 앞서 AI 에이전트 10여 종을 공개했다. 전시에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비롯한 주요 계열사 경영진이 참석했다.
이번에 공개된 AI 에이전트는 보고서 작성이나 회의록 요약 같은 공통 업무를 넘어 계열사별 영업과 투자 판단을 지원하도록 설계됐다.
식품·유통 분야에서는 경쟁사와 시장의 가격을 점검하고 원재료 가격과 상품 수요를 예측한다. 소비자 리뷰를 분석해 점포별 경쟁력과 개선점도 찾아낸다. 상품기획자와 점포 운영자가 경험에 의존해 내리던 판단을 데이터로 보완하는 구조다.
화학 분야에서는 석유화학과 전기차·배터리 산업의 글로벌 시장 전망을 분석한다. 인프라 분야에는 신규 사업 후보지를 발굴하고 영화·콘텐츠의 흥행 가능성을 예측하는 기능을 넣었다. 음성과 동작을 인식해 업무를 처리하는 AI 비서도 공개했다.
핵심 기반은 롯데이노베이트의 통합 AI 플랫폼 ‘아이멤버(Aimember)’다. 대규모언어모델(LLM)과 검색증강생성(RAG) 기술을 활용해 기업 내부 자료에서 업무에 필요한 정보를 찾아 제공한다. 음성인식(STT)과 음성합성(TTS)을 결합해 직원이 말로 질문하고 답을 받을 수도 있다.
롯데이노베이트는 앞으로 AI 에이전트를 그룹웨어와 전사적자원관리(ERP) 시스템에 연결할 계획이다. 질문에 답하는 수준을 넘어 자료 조회와 분석, 보고서 작성, 시스템 입력까지 스스로 수행하는 ‘에이전틱 AI’로 고도화하겠다는 것이다.
기술의 현장 적용도 시작됐다. 아이멤버를 기반으로 개발한 실시간 음성번역 서비스는 소음이 큰 건설 현장에서도 작업자의 음성을 인식하고 건설 전문용어를 반영해 번역한다. 지난해 롯데건설에 도입된 데 이어 올해 5월에는 대우건설로 적용 범위를 넓혔다. 그룹 내부에서 검증한 기술이 외부 매출로 이어질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다.
롯데이노베이트의 AI 사업은 기능과 적용 범위가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지난해 공개한 ‘아이멤버 3.0’에는 AI 비서와 회의록, 보고서, 문서 검토 등 6종의 공통 업무용 에이전트가 담겼다. 이번에는 식품·유통·화학·인프라의 사업 과제를 직접 다루는 10여 종의 산업별 에이전트로 영역을 넓혔다.
이번 행보는 신동빈 회장이 강조해온 그룹 AI 전환 전략의 실행 단계로 볼 수 있다. 신 회장은 지난달 직접 AI 에이전트 개발 교육에 참여한 뒤 “AX 없이는 기업 생존이 어렵다”고 강조했다. 롯데는 연말까지 전 임직원을 대상으로 AI 에이전트 개발 교육을 진행할 계획이다.
신 회장은 하반기 VCM에서도 AI 에이전트를 포함한 기술 발전 속도가 더욱 빨라질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전통은 한계를 가두는 천장이 아닌 새로운 혁신을 위한 출발선”이라며 최고경영자들이 고객 관점에서 사업을 개선하고 과감하게 혁신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국내 정보기술 서비스 기업들은 이미 기업용 AI 에이전트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다. 삼성SDS는 생성형 AI 플랫폼 ‘패브릭스(FabriX)’와 업무지원 서비스 ‘브리티 코파일럿(Brity Copilot)’을 기업과 정부기관에 확산하고 있다. LG CNS는 수익성·보안·데이터 연결성을 기준으로 에이전틱 AI의 실제 업무 적용에 집중하고 있다. SK AX는 여러 AI 에이전트와 기존 시스템을 연결하는 ‘AX젠틱와이어(AXgenticWire)’를 앞세우고 있다.
롯데이노베이트가 이들과 구분되는 지점은 롯데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다. 식품·유통·화학·호텔·건설·콘텐츠 등 서로 다른 산업 현장에서 기술을 시험하고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다. 하나의 AI 기능을 여러 업종에 일괄 적용하기보다 각 계열사의 실제 문제를 해결하는 에이전트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이다.
내부 시장에 머물지 않는 것도 긍정적이다. 롯데건설에서 검증한 번역 에이전트를 대우건설에 공급한 것처럼, 계열사 적용 사례를 외부 기업용 상품으로 전환하면 롯데이노베이트는 그룹의 전산 운영사에서 기업 AI 전환을 지원하는 사업자로 영역을 넓힐 수 있다.
관건은 AI 에이전트가 실제 비용 절감과 매출 증가로 얼마나 이어지는지 수치로 입증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룹 차원의 AI 교육과 산업별 에이전트 개발, 외부 고객 확보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 신동빈 회장의 ‘AX 생존론’이 구호를 넘어 롯데이노베이트를 중심으로 현장 사업으로 전환되고 있는 셈이다.
토요경제 / 양지욱 기자 yjw@sateconomy.co.kr
[ⓒ 토요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