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윤 칼럼] 아직은 살만한 사회이다
'서점 점원의 메모 한 장이 생명을 구하다'
'층간소음이 따뜻한 이웃을 만들다'
김병윤 기자
bykim7161@hanmail.net | 2023-03-06 09:17:57
이른 새벽에 잠이 깼다. 습관처럼 뉴스검색에 들어갔다. 시끄러운 정치판 기사가 도배를 했다. 유명배우의 마약복용, 물가폭등, 러시아 침공 모두가 우울한 기사로 채워졌다.
검색을 끝내려 했다. 바로 그 순간 짧은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짧은 기사 한 줄이 눈시울을 젖게 했다. '서점 점원의 따뜻한 위로가 생명을 구했다'는 기사였다.
어느 독자가 제보한 내용이었다. 독자는 죽음에 관한 책 여러 권을 구입했다. 삶이 정말 힘들어 극단적 생각을 했던 사람이었다. 계산을 하려는 순간 점원이 잠시 무언가를 썼다. 점원은 책 몇 권을 쇼핑백에 넣어 주었다. 계산을 끝낸 제보자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에 왔다. 터덜터덜 걷는 걸음이 삶의 종착역을 향해 가는 기분이었다.
사연의 주인공은 집에 돌아와 쇼핑백을 열어보고 한 없이 울었다. 책들 사이에 메모지 한 장이 함께 있었다. 예쁜 글씨로 쓴 내용에 저절로 울음이 터져 나왔다. 어떤 내용이기에 그랬을까. 내용은 아주 짧았다.
‘많이 힘드시죠? 힘들 땐 힘든 것 그대로도 좋습니다’ 라는 짧은 글귀에 그동안 쌓였던 설움이 눈처럼 녹아 내렸다. 내 옆에 진정한 이웃이 있다는 생각에 삶의 희망을 찾았다.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용솟음 쳤다. 극단적 생각을 했던 자신이 정말 부끄러웠다. 점원의 격려가 귀중한 생명을 구했다. 그 점원은 누구일까. 우리에게 다가온 상상속의 천사였다. 소중한 이웃이었다.
또 다른 기사가 새벽을 환하게 밝혀 주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층간소음 기사였다. 사연의 주인공은 아래층 신혼부부를 칭찬하는 미담이었다.
제보자는 두 아들의 엄마이다. 둘째 아들이 발달장애를 앓고 있다. 발달장애는 힘 조절이 어렵다. 부모의 말림에도 아이는 여기저기 뛰어 다녔다.
부모는 아래층을 위해 여러 가지로 신경을 썼다. 층간소음 매트도 깔았다. 그래도 소용이 없었다. 끝내는 경비실에서 전화가 왔다. 아래층에서 층간소음에 주의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부부는 고민했다. 이사를 갈까 생각도 했다. 엄마는 용기를 냈다. 아들의 사정이 담긴 편지를 음료수와 함께 문 앞에 놓고 왔다. 집에 와서 고민에 빠졌다. 혹시나 기분 나쁘게 한 거는 아닐까 생각했다.
반전이 일어났다. 고민은 쓸데없는 기우였다. 답장이 왔다. 아래층에 사는 주인이 보낸 편지였다. 예비 신혼부부였다. 답장을 받고서야 아래층에 예비 신혼부부가 산다는 것을 알았다. 편지내용이 감동이었다. 자신들도 조카가 있어 아이 보살피는 게 힘들다는 것을 안다는 내용이었다. 끝맺음은 더욱 가슴을 울렸다. 자신들도 이해할 테니 아이 너무 혼내지 말아 달라고 했다. 예비 신혼부부의 배려심이 떠오르는 태양처럼 빛났다.
현대사회는 이기적 삶속에 살고 있다. 우리(we)라는 공동의식이 사라지고 있다. 나(me)라는 개인주의 사상이 자리 잡고 있다. 배려심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해심도 자취를 감추고 있다. 이런 현상은 물질문명에 물들어 가는 현대사회의 부산물이다.
한국사회는 이웃과 함께 하는 공동체 의식이 강했다. 70년대 들어 급격한 산업사회로 바뀌면서 공동체 의식은 점차 사라져 갔다. 풍요로운 물질적 삶에 반비례해 정신적 빈곤을 가져 왔다. 우리(we)가 나(me)로 바뀌어 갔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혹자는 말한다. 옛날이 좋았다고. 배가 고팠어도 옛날이 그립다고 말한다. 필자도 같은 심정이다. 수제비로 끼니를 때웠어도 그 시절이 행복했다. 칠순 노모가 해주시던 밥 한 그릇이 아른거린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소낙비가 되어 가슴을 적신다. 방 한 칸에 온 식구가 새우잠을 자며 웃음꽃을 피우던 시절이 그리워진다. 물질보다 정신적 풍요의 중요성을 느끼게 한다.
인간은 과거에 얽매여 살 수만은 없다. 현실에 적응하며 살아야 한다. 사회적 동물의 특성이다. 현대사회는 치열한 경쟁사회이다.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 한다. 경쟁 속에서 여유를 찾아야 한다. 여유를 갖게 되면 배려심이 생긴다. 배려심이 생기면 다툼이 없어진다. 다툼이 없어지면 평화가 찾아온다. 평화로운 삶에는 즐거움이 동행한다.
평화로운 사회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바로 내 이웃에 있다. 이웃의 따뜻한 말 한 마디가 귀중한 생명을 구한다. 이웃의 자그마한 배려가 삶을 풍요롭게 해준다. 우리사회에는 좋은 이웃이 많다. 단지 밝혀지지 않았을 뿐이다. 우리의 조상들은 이웃의 소중함을 한마디로 정의했다.
이웃사촌이 먼 친척보다 낫다.
토요경제 / 김병윤 기자 bykim716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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