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형 칼럼] “적자 때는 침묵, 흑자 때는 15%?”…삼성전자 성과급 논란의 본질

반도체는 호황과 불황이 반복되는 산업…노사 모두 ‘단기 감정’ 아닌 장기 생존 구조 봐야

이덕형 기자

ceo119@naver.com | 2026-05-12 09:15:02

 

▲이덕형 편집국장삼성전자 노조의 총파업 가능성이 커지면서 반도체 업계를 둘러싼 긴장감도 높아지고 있다. 핵심 쟁점은 단순한 임금 인상이 아니다. 노조는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 재원으로 명문화하고 상한까지 폐지하자고 요구하고 있다. 문제는 이것이 단순한 “성과 공유” 수준을 넘어 삼성전자라는 기업의 수익 구조와 투자 구조 자체를 바꾸는 요구라는 점이다.

노조의 논리에도 이유는 있다. AI 반도체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고, 삼성전자 역시 다시 수익 회복 국면에 들어섰다. 현장에서 기술 개발과 생산을 담당하는 직원 입장에서는 “회사가 살아날 때 직원도 정당한 몫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자연스럽다. 특히 경쟁사인 SK하이닉스가 HBM 시장에서 성과를 내며 대규모 보상을 실시한 상황은 삼성 내부 불만을 키웠다.

하지만 여기서 반드시 돌아봐야 할 시기가 있다. 바로 2023년이다.

당시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은 최악의 불황을 겪었다. 메모리 가격 폭락과 글로벌 수요 급감으로 DS부문은 수조 원대 적자를 기록했고, 성과급 OPI는 사실상 0%가 됐다. 직원들의 실망감은 컸다. 그러나 그 시기 노조가 지금처럼 “영업이익 15% 고정 배분”을 전면에 내세웠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았다. 당시 핵심은 성과급 산정 기준의 불투명성과 임금 협상 절차에 대한 반발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반도체 산업은 원래 호황과 불황의 진폭이 극단적으로 큰 산업이다. 좋을 때는 수십조 원을 벌지만, 나쁠 때는 수조 원 적자를 감수하며 투자해야 살아남는다. 결국 지금 논쟁의 핵심은 “성과를 나누느냐”가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나누느냐”다.

미국 반도체 기업들과 비교하면 차이는 더 선명해진다. 미국 빅테크와 반도체 기업들은 보너스를 주더라도 상당 부분을 RSU(양도제한주식)나 스톡옵션 형태로 지급한다. 직원이 회사 성장의 과실을 공유하는 대신, 주가 하락과 업황 악화의 위험도 함께 부담하는 구조다. 반면 삼성 노조의 현재 요구는 현금 성과급 비중이 크고, 영업이익 일정 비율을 제도적으로 보장받는 방식에 가깝다.

회사 입장에서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반도체 산업은 지금 AI 경쟁으로 인해 천문학적인 투자가 필요한 시기다. HBM, 첨단 패키징, 파운드리, 차세대 공정 등에서 뒤처지면 시장 자체를 잃을 수 있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2024~2025년 HBM 납품 지연과 엔비디아 인증 문제로 기술 경쟁력 논란까지 겪었다. 이런 상황에서 영업이익 일부를 구조적으로 고정 배분하는 것은 투자 여력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고 회사 논리만 옳다고 보기도 어렵다. 삼성전자는 오랫동안 “초격차”를 이야기해왔지만, 현장 직원들 사이에서는 “성과는 회사가 가져가고 책임은 직원이 진다”는 불만이 누적돼왔다. 특히 실적 악화 때는 성과급을 줄이고, 실적 회복 때도 제도 개선에는 소극적이라는 인식은 노조 세력을 키운 배경이 됐다.

결국 이번 사태는 단순한 임금 갈등이 아니다. 삼성전자가 과거의 ‘무노조 경영’ 시대를 완전히 끝내고, 글로벌 수준의 새로운 보상 체계를 만들 수 있느냐의 시험대에 가깝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반도체 산업은 감정으로 운영되는 산업이 아니다. 기술과 투자, 공급망과 시간이 승부를 가른다. 노조 역시 “많이 벌었으니 나눠 달라”를 넘어 장기 경쟁력과 연결된 보상 모델을 고민해야 하고, 회사 역시 “투자해야 한다”는 말만 반복할 것이 아니라 직원들이 납득할 수 있는 투명한 성과 배분 구조를 제시해야 한다.

지금 전 세계는 삼성전자의 성과급 논란으로 벌어진 초유의 사태를 지켜보고있다. 사측과 노조 모두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승패가 아니라 신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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