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제철, 철근 줄이고 AI·美로…노사 리스크도 낮췄다
건설용 철강 다운사이클엔 감산, 데이터센터·자동차강판·에너지 강재로 수요처 확대
조민규 기자
jo1427955@gmail.com | 2026-08-13 09:17:37
현대제철(이보룡)이 건설경기에 민감한 철근 생산능력을 줄이고 인공지능(AI) 전력 인프라, 미국 자동차강판, 미래 에너지용 강재로 수요처를 넓히고 있다. 봉형강 업황 부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저수익 설비를 정리하고, 업황 사이클이 다른 시장으로 이동하는 구조조정이다. 최근 임금·단체협약 잠정합의로 파업 우려를 낮춘 점도 생산 차질 리스크를 줄이는 요인으로 꼽힌다.
현대제철은 올해 2분기 연결 기준 매출 6조1073억원, 영업이익 577억원, 당기순이익 121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1분기 157억원보다 267.5% 늘었고 순이익도 흑자로 돌아섰다. 상반기 매출은 11조8470억원, 영업이익은 734억원이다. 다만 1분기 순손실 영향으로 상반기 누적 순손실은 272억원이었다. 2분기 영업이익률도 0.9%에 그쳤다.
수익성 회복이 제한적인 이유는 봉형강 부진이다. 봉형강은 철근과 형강 등 건설 현장에 많이 쓰이는 제품이다. 국내 주택 착공과 인허가가 흔들리면 수요가 바로 꺾인다. 현대제철의 봉형강류 매출은 2024년 7조9493억원에서 지난해 5조9649억원으로 약 2조원 줄었다. 올해 1분기에도 1조4161억원으로 전년 동기 1조9260억원을 밑돌았다.
현대제철은 이 부문에서 먼저 공급을 줄였다. 인천공장의 90톤 전기로 제강공장과 소형 철근 압연공장을 폐쇄하면서 연간 약 75만톤의 생산능력을 감축했다. 이에 따라 국내 철근 생산능력은 기존 335만톤에서 260만톤으로 약 22% 줄었다. 건설경기 회복을 기다리기보다 저수익 설비를 줄여 원가와 공급 부담을 낮추는 선택이다.
철강업은 제품별 업황 사이클이 다르다. 철근은 국내 주택경기와 밀접하다. 후판은 조선과 에너지 투자에 좌우된다. 자동차강판은 완성차 생산과 현지 공급망에 영향을 받는다. 전력기기와 데이터센터용 강재는 AI 투자와 송전망 확충의 영향을 받는다. 현대제철의 전략은 하강 사이클에 있는 건설용 철강 비중을 줄이고 구조적 수요가 커지는 전방산업으로 무게를 옮기는 데 있다.
AI 전력 인프라가 대표적이다. 현대제철은 지난 3월 ‘차세대 전력 인프라 판매확대 태스크포스(TF)’를 만들고 데이터센터, 에너지저장장치(ESS), 송전철탑을 새 수요처로 정했다. 올해 상반기 이들 3개 분야 판매량은 3만3000톤이다. TF 출범 후 3개월 동안 신규 데이터센터 7곳에서 철근·형강·후판·열연·냉연 등 약 3만1000톤을 수주했다.
현대제철은 AI 전력 인프라 3개 분야 판매량을 올해 약 9만톤, 내년 15만톤, 2030년 40만톤까지 늘릴 계획이다. 회사는 1GW 규모 데이터센터 한 곳을 짓는 데 약 18만~20만톤, 메모리 반도체 공장 한 곳에는 약 10만톤의 철강재가 필요한 것으로 보고 있다. 데이터센터는 건물 골조뿐 아니라 전력설비, 냉각설비, 송배전망을 함께 필요로 한다. 철강 수요가 단순 건축자재에서 전력 인프라용 산업재로 확장되는 지점이다.
미국 투자는 자동차강판 사이클에 대응하는 카드다. 현대제철은 다음 달 4일 미국 루이지애나에서 전기로 일관제철소 기공식을 열 예정이다. 총 58억달러가 투입되는 이 제철소는 연산 270만톤 규모로 자동차강판을 중심으로 생산한다. 상업생산 목표 시점은 2029년이다. 합작법인 지분은 현대제철 50%, 현대차와 기아 미국법인 각각 15%, 포스코 20% 구조다.
미국 제철소는 현대차그룹의 북미 전동화 전략과 맞물린다. 국내에서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하던 자동차강판을 현지에서 생산하면 물류비와 통상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미국의 보호무역 기조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완성차와 철강의 현지 공급망을 묶는 효과도 있다. 현대제철 입장에서는 건설용 철근보다 수익성과 고객 안정성이 높은 자동차강판 비중을 키우는 계기가 된다.
대규모 투자로 재무 부담은 늘고 있다. 현대제철의 연결 순차입금은 지난해 말 7조6051억원에서 올해 3월 말 8조4914억원으로 증가했다. 총차입금도 9조9076억원에서 10조9560억원으로 늘었다. 미국 제철소 합작법인에 올해 1분기까지 7074억원을 출자한 영향도 반영됐다. 다만 3월 말 부채비율은 76.6%, 차입금 의존도는 31.3%다. 국내 3대 신용평가사 신용등급도 모두 AA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노사 변수도 한고비를 넘겼다. 현대제철 노사는 지난달 31일 2026년 임금·단체협약에 잠정합의했다. 노조는 앞서 중앙노동위원회 조정 중지 결정과 조합원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거쳐 쟁의권을 확보했지만, 잠정합의로 파업 우려를 낮췄다. 철강업은 고로와 전기로, 압연 공정의 연속성이 중요한 장치산업이다. 감산과 해외투자, 신규 수요처 확대가 동시에 진행되는 시기에 노사 갈등이 길어지지 않은 것은 생산 안정성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제품군은 자동차와 AI 인프라를 넘어 에너지 분야로도 넓어지고 있다. 현대제철은 차세대 원전 격납용기용 고사양 후판 개발과 양산 체계를 구축해 3분기 고객사에 샘플을 공급할 예정이다. 하이브리드 차량 파워트레인용 고내구성 소재와 고강도 크레인 레일도 개발했다. 전통 철강재를 가격 경쟁으로 파는 방식에서 벗어나 고객 산업별 인증과 성능을 함께 파는 쪽으로 이동하는 흐름이다.
지난 10일에는 글로벌 선급·인증기관 DNV와 미래 에너지용 강재·용접기술 공동개발 협약을 맺었다. 양측은 수소와 암모니아를 운송·저장하는 선박과 해양플랜트용 강재의 성능 검증과 국제 인증체계를 함께 구축하기로 했다. 수소·암모니아 밸류체인은 상용화까지 시간이 걸리지만, 선박·저장탱크·해양플랜트에 쓰이는 강재는 인증 선점이 수주 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현대제철의 사업 재편은 단순한 감산이 아니다. 철근 다운사이클에서는 공급능력을 줄이고, AI 데이터센터와 전력망, 미국 자동차강판, 원전·수소·암모니아용 강재로 새 수요를 확보하는 전략이다. 중국발 공급과잉과 국내 건설경기 둔화로 철강업의 전통 수익원이 약해진 상황에서 사이클이 다른 시장을 포트폴리오에 넣는 방식이다.
하반기 관전 포인트는 세 가지다. 철근 감산이 봉형강 손익을 얼마나 개선하는지, AI 전력 인프라 판매가 목표대로 늘어나는지, 미국 제철소 투자가 재무 부담을 관리 가능한 범위 안에서 진행되는지다. 여기에 임단협 잠정합의가 최종 마무리되면 노사 리스크도 한층 낮아진다. 현대제철은 2분기 흑자 전환으로 숨을 돌렸다. 본격적인 평가는 건설 의존도를 낮춘 새 수요처가 실제 매출과 이익으로 연결되는 시점부터 시작될 전망이다.
토요경제 / 조민규 기자 jo142795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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