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수원 세 모녀를 보내며, 이젠 ‘생존 부저’라도 만들어야
양지욱 기자
yjw@sateconomy.co.kr | 2022-08-26 08:19:45
경기도 수원에서 발생한 세 모녀의 사망 사건이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수년 전부터 병을 앓아 오던 이들은 어떤 사회의 보살핌이나 구조의 손길을 받지 못한 채 안타까운 삶을 끝내고 말았다.
무연고 장으로 치러진 이들의 마지막 길에 늦었지만, 여러 조문 행렬이 이어지며 남겨진 자의 도리를 이어가고 있다. 방송을 듣고 삼삼오오 현장을 찾은 시민들은 “안타깝고 미안하다”며 명복을 빌기도 했다.
이번 장례절차는 ‘공영 장례’다. 세 모녀같이 연고자가 없는 경우 장례는 보통 10시간 정도의 간단한 절차를 거친 후 주검을 발인장으로 옮긴다. 다만 이번엔 가족 세 사람이 동시에 세상을 떠나는 등 여러 상황이 겹치며 보통의 삼일장이 제안됐다.
떠나는 이들은 사실 친척으로 불릴만한 혈육 있다. 하지만 친척들은 (경제적 여력 때문인지) 부담을 느꼈는지 이들의 시신을 인수하지 않았다. 이들의 장례절차는 수원시의 몫이 됐다.
사회적 이슈 때문인지 여러 정치인의 조화가 이어지고 있다. 의도가 어떻든 마지막 길에 보내온 온정이라 믿고 싶다. 현장을 방문한 김건희 여사는 “국가가 해야 할 일을 종교인들이 대신해 줘 고맙다”는 말로 안타까움을 전했다.
이번 사건은 창피하지만,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1인당 GDP 4만 달러에 육박하는, 선진국 대열에 진입한, 대한민국의 사회복지시스템은 없었다. “복지 사각지대를 없앤다”며 그동안 정치권이 외치던 허울 좋은 말들은 그저 신기루였다. 만약 시스템이 있더라도 그 장치는 아예 작동하지 않았다.
또 이번 사건을 보면 전통적으로 가족이나 혈연을 중시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도 없었다. 가난한 이들에겐 친척이라는 이름도 비쌌다. 물론 오랫동안 연락이 끊고 지냈을 친척들을 무리하게 단죄하거나 나무랄 수는 없다. 사회 미덕이던 ‘정’은 이제 장롱에 넣어두어야 한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결국, 이런 복지 사각지대는 시스템을 통해 해결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런 시스템이 작동하는 방식을 대다수 국민, 특히 당사자가 모른다는 것이다. 문제가 터지면 그때 서야 다시 시스템을 점검한다든지 제도를 개혁할 것이란 구호만 난무하는 이유다.
특단의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 복잡할 것도 없다. 국민 모두 누구나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 꼭 필요할 때, 마지막 기로에 섰을 때 선택할 ‘그 무엇’이어야 한다. 왕조시대의 ‘신문고’라도 좋다. 마지막 절박한 상황이라면 이것저것 눈치 보지 말고 딱 한 번이라도 누를 수 있는 ‘생존 부저(buzzer)’가 필요하다. 여기에는 공무원의 알량하고 소소한 권력이 끼어들어선 안 된다. ‘자격을 위해 서류를 요구한다거나 세부적으로 이것저것 확인이 필요하다’라는 식은 절대 안 된다. 누구라도 마지막 기로에 있다면 누를 수 있는.
어쩌면 이와 비슷한 무엇이 이미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면 뭐하나. 필요한 이들이 알지 못할 바엔.
이번 사건 때문에 무작정 우리 사회의 사회복지시스템을 비난할 수는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번 계기로 이런 모든 시스템을 다시 한번 점검할 필요는 있다.
결과적으로 필요하다면 즉시 쓸 수 있는 마지막 ‘부저’라도 만들라는 것이다.
국가 혹은 정부는 국민 하나라도 허투루 보내선 안 된다.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점. 명백하지만 다시 상기하길 바란다. 더는 정치권이나 행정 당국의 주인 노릇은 없어야 한다는 뜻이다.
주인 섬길 방법을 강구하길 바란다.
토요경제 / 양지욱 기자 yjw@sat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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