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인포토로그] 한국 순교의 역사 ‘안성 미리내성지’와 ‘미산저수지’ 솔뫼길
양지욱 기자
yjw@sateconomy.co.kr | 2026-03-03 07:30:59
[토요경제 = 양지욱 기자] 야외 활동이 활발해지는 새봄이 찾아왔다. 아직은 일교차가 커 두꺼운 겨울옷을 벗기는 이른 감이 있지만 곧 봄맞이 나들이객으로 전국이 북적일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다녀온 사적지는 경기 안성시 미산면에 자리한 ‘미리내 성지’다. 조선 후기 종교적 신앙으로 박해받고 희생된 이들의 삶과 정신을 존중하고 기념하기 위해 만든 한국 천주교 역사의 대표적 공간이다.
‘미리내’라는 지명은 안성시 미산면을 관통하는 ‘미리천(美里川)’에서 유래했다. 박해를 피해 미산리 계곡에 모여 살던 신자들의 집집에서 새어 나오던 불빛이 개울물에 비친 모습이 마치 밤하늘의 은하수처럼 반짝였다는 데서 비롯됐다고 전해진다.
‘미리내성지’에는 한국 최초의 유학생이면서 한국 천주교의 첫 사제인 ‘성 김대건 신부’ 묘소가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김대건 신부는 26세에 사제품을 받고 사목활동을 하다 13개월 만에 관에 체포돼 새남터((현 서울 용산구 이촌동 한강변)에서 순교했다. 이민식 빈체시오 신부와 신자들이 40일 동안 기다리다 관의 감시가 소홀해진 틈을 타 그의 시신을 수습했다. 이민식 신부는 김대건 신부의 시신을 짊어지고 험한 산길을 따라 150리(약 60km)를 밤에만 길을 걸으며 이곳 미리내로 모셔 와 안장했다.
김대건 신부의 유해는 미리내성지 위쪽에 자리 잡은 작은 흰색 성당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기념성당’에 모셔져 있다. 이곳에는 김대건 신부의 어머니 우르술라, 김대건 신부의 시신을 이곳에 안장한 이민식 빈첸시오도 함께 안장돼 있다.
정식 공소는 1883년 설치돼 1886년 본당으로 승격했다. 지금의 모습 같은 현대화 과정은 1972년부터 시작됐다. 현재 약 6만평(축구장 28개 규모)으로 조성돼 있지만 현재도 일부 공간에서 시설 확장 사업이 진행 중이다.
◆ 도보 여행만 가능한 미산저수지 ‘솔뫼길’… 운치와 고요한 사색의 길
미리내성지 도보 여행객을 위해 ‘미산저수지’ 솔뫼길을 추천한다.
미산2리 버스정류장에서 하차하면 미산저수지가 한눈에 보인다. 미산저수지 안쪽으로 작은 나무다리를 건너면 저수지를 둘러싼 데크길이 시작된다. ‘솔뫼길’로 붙여진 이 오솔길은 저수지와 맞닿아 있어 물길을 걷는 느낌이 든다.
기자가 다녀온 시기는 겨울 끝자락이라 인적이 드물어 고유했지만 곧 많은 사람들이 찾을 것으로 보인다. 솔뫼길이 끝나면 미리내 마을을 보인다. 가구 수가 많지 않은 작은 마을이지만 예쁘게 단장돼 있어 색다른 여운 느낄 수 있다.
마을을 지나 도로를 따라 걷다보면 미리내 성지 입구를 닿는다. 울창한 숲과 완만한 언덕을 따라 걸으며 화려함보다는 절제된 아름다움이 인상적이다. 예수의 고난을 조각상으로 형성한 ‘십자가의 길’, 묵주를 굴리며 기도하는 ‘묵주 기도(로사리오)’ 길을 따라 천천히 걸으면 일반인도 자연스럽게 호흡이 가라앉고, 마음이 함께 정돈된다.
성지 맨 위쪽으로는 ‘청년 김대건의 길’이라는 순례·도보 코스도 형성돼있다. 청년 김대건 신부가 이 길을 따라 사목 활동을 했으며 이민식 신부가 이 길을 통해 김대건 신부의 시신을 모셔왔다.
미리내성지는 순례객 뿐 아니라 일반 여행객에도 가족들과 다녀오기 좋은 곳이다. 잘 정비된 산책로와 성당, 기도 공간은 차분한 사색의 시간을 제공한다. 종교를 떠나 삶의 속도를 잠시 늦추고 싶은 이들에게 ‘쉼’을 선사한다.
토요경제 / 양지욱 기자 yjw@sat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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