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6년, 현대모비스·현대글로비스 '현대차 밖' 성장…현대제철·현대캐피탈 해외 확장
현대모비스 비계열 수주 91억달러…글로비스 외부 화주 확대
현대로템 독자 수주잔고 30조원…철도·방산 성장축 확보
현대제철 미국시장·현대캐피탈 해외금융 확장…수익 독립성 시험
김지영 기자
jykim.media@gmail.com | 2026-10-14 02:21:50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취임 6년 동안 현대차·기아뿐 아니라 주요 계열사의 사업구조도 달라졌다. 완성차 생산과 판매를 지원하던 계열사들이 외부 고객과 독자적인 시장을 확보하면서 그룹의 수익 기반을 넓히고 있다.
14일 취임 6주년을 맞은 정의선 회장 체제에서 주목할 변화는 현대차그룹의 수직계열화가 새로운 성장 방식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몽구 명예회장 시절 현대차그룹은 소재와 부품, 완성차, 물류, 금융을 하나로 연결해 품질과 생산 효율을 높였다. 현대제철이 자동차강판을 공급하고 현대모비스가 부품을 만들면 현대차·기아가 완성차를 생산하는 구조다. 현대글로비스는 물류를, 현대캐피탈은 판매금융을 담당했다.
이 체계는 현대차·기아의 글로벌 성장에 중요한 기반이 됐다. 계열사들도 완성차 생산량이 늘어날수록 안정적인 수요를 확보할 수 있었다.
정의선 체제에서는 이러한 계열사 간 협력을 유지하면서 각 회사가 외부시장에서 경쟁하는 구조가 확대되고 있다. 내부 수요를 통해 축적한 기술과 사업 경험을 비계열 고객 확보에 활용하는 방식이다.
가장 뚜렷한 성과를 보이는 곳은 현대모비스다.
현대모비스(이규석)는 지난해 현대차·기아를 제외한 글로벌 완성차업체에서 91억7000만달러의 수주를 확보했다. 당초 목표인 74억5000만달러를 23% 웃돌았다. 올해 수주 목표는 118억4000만달러로 높였다.
북미와 유럽 완성차업체를 대상으로 배터리시스템과 섀시모듈 등 대형 공급계약을 확보한 것이 실적 확대의 배경이다.
지난 3월에는 헝가리 케치케메트에 글로벌 고객사 전용 섀시모듈 공장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이 공장에서는 메르세데스-벤츠의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차량에 들어가는 섀시모듈을 공급한다.
현대차·기아 생산시설에 부품을 납품하기 위해 해외 공장을 운영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경쟁 완성차업체의 생산거점에 직접 대응하는 공급망을 구축한 것이다.
현대모비스는 2033년까지 부품제조 부문의 글로벌 완성차 고객 매출 비중을 40%로 확대한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2024년 중장기 전략 발표 당시 약 10%였던 비중을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여기서 수주액과 매출은 구분해야 한다. 지난해 확보한 91억7000만달러는 신규 계약 규모로, 해당 금액이 모두 지난해 매출로 반영된 것은 아니다. 실제 생산과 납품이 진행되는 기간에 걸쳐 매출로 실현된다.
현대모비스의 올해 2분기 연결 매출은 16조3247억원, 영업이익은 9752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각각 2.4%, 12.1% 증가했다. 고부가 전장부품과 글로벌 고객사 매출 확대, 애프터서비스(A/S) 사업 등이 실적 개선에 기여했다.
앞으로는 외부 수주가 실제 매출과 이익으로 얼마나 연결되는지가 중요하다. 기존 현대차·기아 공급물량에 더해 새로운 고객을 확보하는 만큼 글로벌 부품사와의 기술·가격 경쟁에서도 수익성을 유지해야 한다.
현대글로비스도 계열사 중심 사업구조를 외부시장으로 넓히고 있다.
현대글로비스(이규복)는 2030년까지 전체 매출에서 비계열 고객이 차지하는 비중을 40%로 확대할 계획이다. 글로벌 포워딩 부문에서는 비계열 매출 비중을 60% 이상, 자동차선 운송사업에서는 50% 수준으로 높인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현대차·기아의 완성차와 자동차부품을 운송하며 구축한 선박과 터미널, 물류센터, 해외 네트워크를 다른 기업의 물류에도 활용하는 전략이다.
운송 대상도 자동차부품에서 배터리와 건설기계, 에너지설비, 금속·화학·바이오·반도체 등으로 확대하고 있다.
사업 확대는 실적에도 반영되고 있다.
현대글로비스의 지난해 연결 매출은 29조5664억원, 영업이익은 2조730억원으로 모두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특히 해운사업 영업이익은 비계열 고객 증가와 선대 운영 효율화 등에 힘입어 전년보다 104% 증가했다.
올해 2분기에는 매출이 8조7054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5.8% 늘었다. 중국 완성차업체 등 비계열 고객의 운송물량과 북미 내륙운송 수요 증가가 외형 확대에 기여했다.
다만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4951억원으로 8.1% 감소했다. 해운사업에서 유가 상승에 따른 비용 부담이 커진 영향이다.
외부 고객을 늘리는 것과 수익성을 높이는 것은 별개의 과제라는 점을 보여준다. 비계열 운송물량을 확보하더라도 운임과 유가, 선박 운영비 등에 따라 이익이 달라질 수 있다.
현대글로비스가 2030년 매출 40조원 이상과 영업이익률 7% 수준을 동시에 목표로 제시한 것도 외형 확대와 수익성 관리가 함께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대로템은 다른 계열사보다 독립적인 사업기반이 일찍 형성된 회사다.
현대로템(이용배)의 철도와 방산사업은 현대차·기아의 자동차 생산량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크지 않다. 국내외 정부와 철도 운영기관 등을 상대로 독자적인 수주 경쟁을 벌이는 구조다.
지난해 연결 매출은 5조8390억원으로 전년보다 33.4%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1조56억원으로 120.3% 늘면서 처음으로 1조원을 넘어섰다.
해외 방산 수출 확대와 국내외 철도사업이 실적 성장을 이끌었다.
올해 상반기에도 외부 수주가 이어졌다. 베트남 호찌민 도시철도 2호선 차량사업과 모로코 전동차 유지보수 사업 등을 확보하면서 6월 말 수주잔고는 30조4046억원으로 처음 30조원을 넘어섰다.
다만 상반기 영업이익은 4566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0.8% 감소했다. 신규 수주가 늘어나더라도 계약별 생산과 납품 일정에 따라 이익 실현 속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현대로템의 독자적인 시장은 정의선 체제에서 처음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철도차량 제작과 해외 진출은 이전부터 이어져 왔다. 다만 최근에는 해외사업 확대가 수주잔고와 영업이익 증가로 연결되면서 그룹 내 독립적인 수익원으로서의 역할이 커졌다.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가 기존 그룹 내부 수요를 발판으로 외부 고객을 확보하고 있다면 현대로템은 별도의 산업시장에서 축적한 기술과 수주 경험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차이가 있다.
현대제철은 이러한 외부시장 확대를 위한 대규모 투자 단계에 있다.
현대제철(이보룡)은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총사업비 58억달러 규모의 전기로 일관제철소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연간 생산능력은 270만톤이며 2029년 상업생산을 목표로 한다.
현대제철이 지분 50%를 보유하는 합작사업으로 포스코가 20%, 현대차와 기아가 각각 15%를 투자한다. 지난 9월에는 현지 기공식도 열었다.
현대차 앨라배마공장과 기아 조지아공장,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 등이 주요 공급 대상에 포함되지만 사업 목표는 그룹 내부 수요에 한정되지 않는다.
현대제철은 미국 현지 완성차업체에도 자동차강판을 공급해 글로벌 고객 기반을 확대할 계획이다.
이 사업은 그룹 내 안정적인 수요를 확보하면서 외부시장을 개척하는 전략이 결합된 사례다.
현대차·기아가 초기 판매 기반을 제공한다면 향후 다른 완성차업체의 강판 공급계약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현대제철의 독자적인 가격·품질 경쟁력이 검증될 수 있다.
다만 미국 제철소는 아직 건설 단계로 수익성이 확인된 사업은 아니다. 투자비 회수와 설비 가동률, 비계열 판매 비중, 현지 생산원가 등이 향후 성과를 판단할 지표다.
특히 자동차강판은 완성차업체의 품질인증과 장기 공급계약이 중요한 제품이다. 그룹 외부 고객을 확보하려면 실제 공급이 시작되기 전부터 기술검증과 구매 협의를 진행해야 한다.
현대캐피탈은 외부 고객 확대보다 그룹과의 사업 연계를 해외로 확장하는 방식에 가깝다.
현대캐피탈(정형진)은 현대차·기아·제네시스의 판매를 지원하는 전속 자동차금융을 기반으로 글로벌 사업을 확대해 왔다.
지난해 말 기준 글로벌 금융자산은 약 222조원으로 전년 196조원보다 13.3% 증가했다. 자동차 판매와 연계한 할부·리스 등 금융서비스를 통해 사업 규모를 키운 결과다.
올해 8월에는 인도 금융법인을 공식 출범시켰다. 현대캐피탈 인도는 현지 자동차 판매 딜러를 대상으로 금융서비스를 제공한 뒤 일반 소비자 대상 자동차금융으로 사업을 넓힐 계획이다.
현대캐피탈의 사업모델은 현대모비스나 현대글로비스처럼 그룹 외부 고객을 늘리는 방식과 다르다. 현대차그룹의 글로벌 판매망을 활용하면서 차량 구매부터 이용과 재구매에 이르는 금융 수요를 확보하는 구조다.
자동차 판매가 지속적인 금융자산과 이자·수수료 수익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사업 영역이 넓어질수록 국가별 조달금리와 연체율, 금융규제, 신용위험에 대한 관리 능력도 중요해진다. 글로벌 금융자산의 증가가 실제 이익과 자본 효율성 개선으로 이어지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이처럼 현대차그룹 계열사의 성장 방식은 하나로 묶기 어렵다.
현대모비스는 글로벌 완성차업체를 대상으로 부품 수주를 확대하고 있고 현대글로비스는 비계열 물류 고객을 늘리고 있다. 현대로템은 독립적인 철도·방산시장에서 이미 대규모 매출과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반면 현대제철 미국사업은 본격적인 생산과 외부 고객 확보를 앞두고 있으며 현대캐피탈은 그룹의 글로벌 판매망을 기반으로 금융사업을 확장하는 단계다.
사업의 성격과 성장 단계가 서로 다른 만큼 동일한 기준으로 계열사 경쟁력을 평가하기는 어렵다.
보스턴다이나믹스 역시 이 구도에서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 기존 산업용 로봇의 외부 판매 실적은 있지만 휴머노이드 아틀라스는 본격적인 양산과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외부 고객 확보에 따른 수익성을 검증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미 실적을 내는 계열사들과 차이가 있다.
정의선 체제에서 수직계열화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룹 내부 생산과 판매를 지원하는 기존 사업은 여전히 계열사의 중요한 수익 기반이다.
달라지는 것은 안정적인 내부 수요를 확보한 회사가 이를 외부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자산으로 활용하는 범위다.
현대차·기아의 성장에만 실적이 좌우되던 구조에서 벗어나 다른 완성차업체와 글로벌 화주, 철도 발주처, 금융 소비자 등으로 고객 기반을 넓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기업가치를 판단하는 기준도 달라질 수 있다.
현대모비스는 비계열 수주가 실제 매출과 이익으로 전환되는 속도, 현대글로비스는 외부 고객 확대에 따른 운송 수익성, 현대로템은 대규모 수주잔고의 이익 실현과 현금흐름이 중요하다.
현대제철은 미국 생산시설의 가동률과 그룹 외부 판매 비중, 현대캐피탈은 해외 금융자산의 건전성과 자본 효율성을 통해 성과를 확인할 수 있다.
그룹 차원에서도 계열사별 수익원이 다양해지면 완성차 시장의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사업 기반이 넓어진다. 반면 독자적인 외부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만큼 각 회사의 투자 판단과 비용 관리, 기술 경쟁력에 대한 책임도 커진다.
정의선 회장 취임 6년 동안 현대차그룹은 완성차 중심의 기존 사업체계를 유지하면서 계열사가 각자의 시장에서 성장할 수 있는 영역을 확대해 왔다.
그 성과는 이미 숫자로 확인되는 사업과 앞으로 검증해야 할 사업으로 나뉜다. 현대모비스의 글로벌 수주와 현대글로비스의 비계열 물량 확대, 현대로템의 수익 성장은 전자에 해당한다. 현대제철의 미국시장 개척과 보스턴다이나믹스의 휴머노이드 사업은 후자의 성격이 강하다.
결국 다음 6년의 성적표는 현대차·기아의 판매실적뿐 아니라 주요 계열사가 그룹 밖에서 얼마나 많은 고객을 확보하고 독자적인 이익을 창출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전망이다. 현대차그룹의 경쟁력이 완성차 두 회사에서 여러 사업회사로 확장되고 있는지를 판단할 기준도 여기에 있다.
토요경제 / 김지영 기자 jykim.medi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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