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경제 17주년 특별기획] 역사의 아픔을 간직한 지붕 없는 박물관 '군산 이야기'(18)

서해안의 특산물 ‘박대’, 창업주의 자비심이 담긴 ‘이성당 단팥빵’, 맛 좋고 역사도 긴 ‘짬뽕’

김병윤 기자

bykim7161@hanmail.net | 2022-06-29 09:09:27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 대한민국 근현대사는 아픔과 고난의 연속이다. 그 가운데 일제강점기는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역사다. 일제는 36년간 우리의 삼천리 금수강산을 수탈하고 농락했다. 군산은 그런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대표적인 도시다. 김병윤 대기자는 지난 100여 일 이런 아픔의 도시 군산의 이곳저곳을 돌았다. 그리고 다시 웅비하는 군산을 목도했다. 김병윤 대기자가 둘러본 ‘군산 이야기’를 ‘토요경제 17주년 특별기획’ 일환으로 매주 2회 독자에게 전하려 한다. [편집자 주]

 

서해안의 특산물 ‘박대’

▲ 박대 <사진=김병윤 대기자>

 

‘박대’는 서해안에서 주로 서식한다. 서대과의 어종이다. 군산 태안반도에서 많이 잡힌다. 예전처럼 흔하지는 않다. 불법 어업으로 어획량이 줄었다. 새끼를 남획한 결과다. 군산시는 박대 산업 육성에 힘쓰고 있다. 박대는 먹기에 편하다. 살이 통째로 찢어진다. 가시발림도 없다. 회로는 안 먹는다. 식감이 안 좋아서다. 주로 구워 먹고 쪄서 먹는다. 탕으로도 잘 먹지 않는다.

 

박대는 살이 찰지다. 부서지지 않는다. 생선구이로 먹기에 제격이다. 구운 살을 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별미다. 군산에서는 아이들 도시락 반찬으로 많이 싸줬다. 추억의 음식이다. 쪄서 먹어도 좋다. 담백한 맛에 거부감도 없다. 매콤한 맛이 생각나면 조림으로 해 먹어도 좋다. ‘박대식혜’도 별미를 선사한다.

박대의 원래 명칭은 ‘대박’이다. 정말일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우스운 얘기가 전해진다. 옛날 어느 어부가 고기잡이에 나섰다. 그물에 볼품없는 생선이 잡혔다. 몸과 머리가 납작했다. 모양은 타원형이었다. 입과 눈이 바늘구멍같이 작았다. 두 눈은 몸 왼쪽으로 몰려있었다. 

 

어부는 집에서 먹을 방법을 궁리했다. 쪄서 먹고 구워 먹고 졸여서도 먹어봤다. 껍질로 묵을 쒀서 먹어 보기도 했다. 모든 맛이 천하일품이었다. 어부는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대박이라고. 생선 이름을 대박이라고 지었다. 어부는 욕심이 생겼다. 이 생선을 혼자만 먹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이 알까 두려웠다. 생선 이름을 거꾸로 지었다. 박대라고.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이 생선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어부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어부의 작명 솜씨가 뛰어났다. 선견지명이 있었던 걸까. 박대는 지금 값비싼 생선이다.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박대는 ‘수궁가 판소리’에도 등장한다. 한림원(翰林院) 학사로 묘사된다. 영리한 고기로 분류된다.

박대는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다. 열량이 낮고 비린내가 거의 없다. 건강식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다른 지역에서는 먹기가 쉽지 않다. 못생긴 박대가 군산의 별미로 떠올랐다. 군산시는‘황금박대’ 브랜드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다.

창업주의 자비심이 담긴 ‘이성당 단팥빵’

▲ 이성당 단팥빵  <사진=김병윤 대기자>

 

‘이성당(李盛堂)’ 빵에는 자비심이 담겨있다. 창업주의 사랑이 녹아있다. 배고픈 사람의 허기를 채워줬다. 이성당은 1945년 오남례 할머니가 창업했다. 창업 75년이 넘었다. 오남례 할머니는 독실한 불교 신자였다. 안타깝게도 10년 전에 돌아가 셨다. 76세의 정정한 나이에. 오남례 할머니는 주위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었다.

가게 앞에 노점상이 많았다. 하루가 고달픈 노인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에게 빵과 우유를 건넸다. 하루도 빠짐이 없었다. 매일같이 무료로 나눠줬다. 노점상들의 한끼를 해결해 줬다. 빵과 우유를 주며 꼭 한마디씩 했다. 배고프면 언제든 가게에 와서 빵을 가져가라고. 노점상들은 용기를 얻었다.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생겼다. 자신들의 든든한 후원자가 생겨서.

할머니의 자선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고아원과 양로원에 팔다 남은 빵을 보냈다. 팔다 남은 빵은 절대 다음날 팔지 않았다. 고객에 대한 신조였다. 자비와 신용을 함께 실천한 것이다.

이성당의 역사는 일제 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910년 일본인 ‘히로세 야스타로’가 처음 문을 열었다. 이즈모야(出雲屋)라는 과자점으로 문을 열었다. 해방되자 오남례 할머니 부부는이 가게를 인수해 직접 운영하기 시작했다. 인수와 함께 정직과 신용으로 고객의 사랑을 받았다. 오남례 할머니의 무한한 자비심이 빛을 발했다. 군산의 대표음식이 됐다.

이성당 단팥빵의 인기는 무얼까. 단팥빵에 팥앙금이 많이 들어간다. 팥앙금을 많이 넣을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져서다. 싼값에 팥앙금을 공급받고 있다. 이성당은 팥앙금 회사를 별도로 운영한다. 1983년에 설립했다. 규모가 대단하다. 국내 팥 소비량의 70%를 이곳에서 공급한다. 전국에 60개의 대리점이 있다.

이성당 단팥빵은 이제 군산의 브랜드가 됐다. 전국 각지에서 관광객이 모여든다. 명소가 됐다. 관광객이 줄을 선다. 단팥빵을 맛보기 위해서. 이성당은 군산을 벗어나 전국으로 뻗어 나갔다. 롯데백화점, 신세계백화점 등에 지점을 냈다. 전국에서 하루 3~4만 개의 빵이 팔리고 있다. 2019년 매출액이 223억 원에 이르렀다. 이성당은 2020년 8월에 ‘백년가게’로 선정됐다.

이성당 단팥빵은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장사는 돈을 버는 것이 아니다. 같이 살아가기 위함이다. 버는 만큼 베풀어야 한다. 베풀면 다시 돌아온다. 창업주 오남례할머니는 단순한 진리를 실천하고 돌아가셨다. 이성당은 아들이 인수한 뒤 크게 번창했다. 아들은 어머님 음덕을 고마워하고 있다. 이성당 단팥빵은 유난히 달콤하다. 왜 그럴까. 오남례 할머니의 자비심이 스며들
어서가 아닐까.

맛 좋고 역사도 긴 ‘짬뽕’
군산 ‘짬뽕’은 유명하다. 맛이 좋아서다. 다른 지역 짬뽕과 맛이 다르다. 이유가 있다. 우선 역사가 길다. 군산에는 일찍부터 중국인이 많이 살았다. 임오군란(壬午軍亂·조선 고종 때 구식군대가 일으킨 군란) 때 이주해 왔다. 당시만 해도 1,500여명이 살았다. 한국·중국·일본인이 뒤섞여 살았다.

▲ 군산짬뽕 <사진=김병윤 대기자>

 

중국인은 면 요리를 개발했다. 한국인 입맛에 맞춰 만들었다. 해산물을 이용했다. 짬뽕이었다. 군산은 짬뽕을 만들기에 최고의 장소였다. 싱싱한 해산물이 많았다. 종류도 다양했다. 값싸게 살 수 있었다. 해산물이 듬뿍듬뿍 들어갔다. 아낌없이 쏟아 넣었다. 군산은 농경지가 넓다. 채소도 풍부했다. 해산물과 채소의 조화가 이뤄졌다. 중국인의 손맛이 더해졌다. 얼큰하게 만들었다. 한국인의 입맛에 딱 맞았다.

새로운 맛이 탄생했다. 값도 저렴했다. 부담 없이 먹을 수 있었다. 손님이 늘어났다. 전국으로 소문이 났다. 관광객이 모여들었다. 군산 짬뽕 맛을 보기 위해. 지금도 짬뽕집에는 길게 줄을 선다. 식사 시간과 구분이 없다. 짬뽕을 먹으려고 식사시간을 건너뛴다.

여기저기 짬뽕집이 들어섰다. 현재 160여 개의 짬뽕집이 있다. 골목골목마다 짬뽕집을 볼 수 있다. 가게마다 맛이 다르다. 그들만의 비법으로 짬뽕을 만든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고 한다. 군산 짬뽕은 그렇지 않다. 소문 난 만큼 맛이 있다. 소문보다 더 맛있다. 짬뽕은 군산의 대표 음식이 되었다. 군산시는 짬뽕의 브랜드화에 힘쓰고 있다. 국내 최초로 짬뽕거리도 조성했다. <계속>

 

토요경제 / 김병윤 대기자 bykim716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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