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뤽상부르공원 앞 김어준의 ‘파리 식당’…35년 전 노숙, 그 이상의 이유
프랑스 파리에 문을 연 김어준의 퓨전 한식당 ‘방드르디 구르망’ 직접 방문기
김정수 쉐프와 전주대 한식조리학과 출신 주방 팀 구성…국내 명장 전통소스 직접 공수
김어준 “한국인들 이 정도의 미각으로 이렇게 미식 즐기는 것 세계에 알리고 싶어”
양지욱 기자
yjw@sateconomy.co.kr | 2026-07-19 07:00:08
올해 초 계획했던 프랑스 여행을 위해 지난 7월 초 파리를 찾았다. 마침 유튜브 시사 프로그램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이 파리 시내에 퓨전 한식당 ‘방드르디 구르망(Vendredi Gourmand·금요미식회)’을 열었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찾아가 봤다.
금요미식회는 파리 5구 뤽상부르공원 동문과 팡테옹 사이 골목에 자리 잡고 있었다. 프랑스 정치의 중심이자 대학가와 관광지가 맞물린 지역이다. 시테섬과 노트르담 대성당도 멀지 않다.
30평 남짓한 식당 내부는 블랙과 화이트 톤의 인테리어 구성과 간결한 가구 배치로 세련되고 깔끔한 인상을 줬다. 우리나라 1980∼90년대 포크송이 더해지면서 파리 한복판에서 익숙한 한국적인 정서와 온기가 느껴졌다.
실내에서 가장 눈에 띈 곳은 주방이었다. 홀과 주방을 구분하는 커튼이나 벽을 없앤 개방형 주방이라 음식이 조리되는 과정과 요리사들의 분주한 움직임이 고스란히 보였다. 위생과 요리에서 자신감이 엿보였다.
손에 익지 않은 서툰 서빙, 낯선 메뉴에 어리둥절한 손님, 정신없이 움직이는 직원 등 막 문을 연 식당 특유의 긴장감과 활기가 홀 전체에 넘쳤다.
식당 주인인 ‘공장장’ 김어준 씨도 직접 손님을 맞느라 분주해 보였다. 방송을 듣고 찾아온 한국인 손님들이 인사를 건네거나 사진 촬영을 요청할 때마다, 그는 항상 만나왔던 지인처럼 편안하게 손님들을 대했다.
◆ 김정수 쉐프와 전주대 한식조리학과 출신 요리사들이 주방 팀 꾸려
금요미식회의 주방을 책임지는 사람은 김정수 셰프다. 김 셰프는 원래 뉴스공장 기자 출신으로 약 2년 동안 뉴스공장의 요리 코너인 ‘금요미식회’를 진행하며 본격적으로 음식과 인연을 맺었다.
뉴스공장이 파리 식당 프로젝트를 계획하면서 그는 회사 방침에 따라 한식조리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이후 프랑스 취업비자까지 받아 파리 금요미식회의 주방을 맡게 됐다.
김 쉐프와 주방을 책임지는 요리사들은 전주대학교 한식조리학과 출신들이다. 뉴스공장이 전주대와 산학협동 MOU(업무협약)를 맺고 학생들을 데려와 팀을 꾸린 것으로 알려졌다.
메뉴는 단출하다. 단품 요리 5개와 디저트 1개 등 모두 6개다. 단품 요리는 방송의 ‘금요미식회’ 코너에서 선보였던 음식 가운데 대표 메뉴를 골라 구성했다.
요리의 기본이 되는 고추장과 간장 등은 국내 장류 명장들이 만든 장류를 직접 공급받는다. 한국 전통 장맛을 바탕으로 프랑스 현지 식재료를 조합해 한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퓨전 음식이다.
김어준 씨는 방송에서 “우리 한국 사람들은 이 정도의 미감을 갖고 있고, 이렇게 미식을 한다는 것을 미식의 나라 프랑스에 알리고 싶었다”는 취지로 식당을 연 이유를 설명하기도 했다.
가장 비싼 메뉴인 ‘조선 스테이크와 무생채 밥’은 34€(유로)다. ‘전라도식 고추장 육회’는 18€, 유자간장 관자 스테이크는 19€, 수란채는 22€, 김진홍 초장 샐러드와 냉제육은 26€였다. 생수는 무료로 제공됐다.
디저트인 ‘뤽상부르의 정원’은 12.5€다. 살얼음 아래에 남해 유자로 만든 젤라토를 담아낸 음식으로, 숟가락을 넣자 차가운 얼음과 상큼한 유자 향이 함께 올라왔다. 식당 바로 앞 뤽상부르공원의 풍경을 작은 접시 위에 옮겨 놓은 듯했다.
일부 언론은 금요미식회의 메뉴 가격이 비싸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현장에서 주변 식당들의 가격을 비교해보면 특별히 과도한 수준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금요미식회가 위치한 곳은 뤽상부르공원과 팡테옹, 소르본대학 등이 몰려 있는 대표적인 관광·교육 중심지다. 파리 안에서도 임대료와 외식 물가가 비교적 높은 지역에 속한다.
인근 일반 식당의 단품 요리는 대체로 19∼25€ 수준이었다. 식당에서 물 1병(1ℓ)은 5∼7€, 300㎖ 맥주 한 잔도 7~8€ 정도였다. 한화로 계산하면 물 한 병이나 맥주 한 잔에 1만원을 훌쩍 넘는 셈이다.
이런 현지 물가와 입지를 함께 고려하면 금요미식회 가격은 이해할 만한 수준이다. 오히려 생수를 무료로 제공하는 점은 파리 식당 문화에서는 낯설면서도 반가운 부분이었다.
◆ 왜 하필 뤽상부르공원 앞일까… 리옹역에서 노숙했다면 그곳에 차렸을까
식사를 하면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왜 김어준 씨는 파리의 수많은 장소 가운데 뤽상부르공원 앞에 식당을 열었을까.
김 씨는 35년 전 배낭여행 시절 뤽상부르공원 문 앞에서 노숙하며 언젠가 이곳에 식당을 열겠다고 다짐했고, 마침내 그 꿈을 실현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식당 주변을 직접 걸어보니 이곳을 단순히 개인적인 추억만으로 선택했다고 보기에는 공간이 지닌 상징성이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요미식회 바로 앞에 있는 뤽상부르공원은 파리 시민들의 휴식 공간이자 프랑스 민주주의와 의회 정치의 상징적인 장소다.
공원 안의 ‘뤽상부르궁’은 17세기 마리 드 메디시스 왕비를 위한 궁전이었으나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 시대를 거치며 현재 프랑스 상원의사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공원은 프랑스 상원 직접 소유하고 관리하지만 시민과 관광객에게 무료로 개방돼 있다.
엄숙한 정치 공간과 시민들의 자유로운 일상이 하나의 공원 안에서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곳이다.
식당에서 뤽상부르공원 반대쪽을 따라 5분 정도만 걸으면 팡테옹 광장이 나온다. 이곳은 단순한 묘지가 아니다. 프랑스가 어떤 사람을 국가적 위인으로 기억할 것인지, 어떤 가치와 정신을 다음 세대에 남길 것인지 보여주는 공간이다.
프랑스 근대사 중심에 있는 팡테옹은 프랑스의 철학·과학·문화가 한 건물에 압축된 장소다. 원래 루이 15세가 파리의 수호성인인 성 주느비에브에게 헌납하려고 세운 가톨릭 성당이었으나 프랑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건물의 용도가 가톨릭 성당과 공화국의 국립 영묘를 오갔다.
1791년 프랑스 공화국 정부가 영묘로 지정한 이후, 나폴레옹 1세(성당) → 루이 필리프(영묘) → 나폴레옹 3세(성당)를 거쳐, 1885년 빅토르 위고의 장례식을 계기로 지금의 공화국 영묘로 고정됐다.
현재 팡테옹에는 프랑스 국민 소설가 빅토르 위고를 비롯해 계몽주의 철학자 볼테르와 장 자크 루소, 과학자 마리 퀴리, 인권운동가 조세핀 베이커, 홀로코스트 생존자이자 여성 인권의 상징인 시몬 베유 등이 안장돼 있다.
또 팡테옹 중앙에는 물리학자 레옹 푸코를 기념하는 ‘푸코의 진자’ 복제품이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 프랑스 민주주의와 공화정이 자리 잡기까지 겪었던 갈등과 변화, 그리고 종교와 과학, 왕정과 공화정의 역사가 이 건물 하나에 켜켜이 쌓여 있다.
기자는 문득 ‘만약 김 씨가 퐁네프 다리나 샹젤리제 거리에서 노숙했다면 그곳에 식당을 열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이를 참지 못하고 김 씨에게 직접 물었다.
“이곳을 선택할 때 지리적·역사적 의미도 고려한 것 아닙니까.”
그는 잠시 웃더니 짧게 답했다.
“그럴 수도 있고요.”
명확한 긍정도 부정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 짧은 대답은 오히려 여러 해석의 여지를 남겼다.
금요미식회는 35년 전 한 청년이 품었던 꿈을 현실로 옮긴 공간이다. 동시에 한국의 음식과 콘텐츠가 파리라는 세계적인 도시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시험하는 무대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이 식당은 과거의 약속을 지킨 종착점이라기보다, 한국의 음식과 문화, 미디어 콘텐츠가 유럽 한복판에서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출발선에 더 가까워 보였다.
뤽상부르공원과 팡테옹 사이, 프랑스 민주주의와 공화정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거리에서 문을 연 작은 한식당. 그 역사적 의미 역시 ‘금요미식회’를 구성하는 보이지 않는 한 조각인지 모른다.
토요경제 / 양지욱 기자 yjw@sateconomy.co.kr
[ⓒ 토요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